사사기 8장 22절부터 35절 묵상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하나님을 대신할 때: 이름보다 믿음을 남기는 삶‘
대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매일 큐티 성경 묵상 글쓰기, 26/9/18, 908일차,
목차
[살핌]
사사기 8장 22절부터 28절
: 에봇의 올무
사사기 8장 29절부터 35절
: 하나님과 은인에 대한 망각
[새김]
하나님을 위한 것이 하나님을 대신할 때
: 이름보다 믿음을 남기는 삶
사사기 8장 22절부터 35절 묵상의 배경
이 단락은 미디안에 대한 승리를 마무리하면서, 다음 장의 가문 내부 비극을 준비한다. 앞선 사사기 7장 2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자기 힘으로 구원받았다고 자랑하지 못하게 하신다.
그런데 8장 22절에서 백성은 기드온에게 “당신이 우리를 … 구원하셨으니”라고 말한다. 기드온의 기여를 인정하는 것 자체보다, 그 기여를 가문의 지속적인 통치권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중요하다.
뒤의 9장에서는 아비멜렉, 세겜, 바알브릿 신전이 결합한다. 따라서 8장의 아들들과 세겜의 첩, 아비멜렉의 이름, 바알브릿 숭배는 단순한 부록이 아니라 다음 사건을 준비하는 요소다.
사사기 8장 22~23절
: 세습 통치의 요청과 여호와의 통치 선언
22절에서 백성은 전쟁의 공로를 장기적인 통치권으로 바꾸려 한다. 요청은 기드온 개인에게 머물지 않고, 아들과 손자까지 이어진다. 위기 때 검증된 지도력을 아직 검증되지 않은 후손에게까지 연장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구원하신다. 따라서 사람에게 감사하는 일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의 공로가 하나님을 대신할 권위나 후손의 무조건적인 지배권이 되면, 감사가 잘못된 방향으로 확장된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사람이나 제도가 스스로 가진 독립적인 권력이 아니다. 모든 권한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목적과 책임 안에서만 바르게 사용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한 지도자를 통해 도움을 주셨다고 해서, 그 지도자나 그의 가문에 계속 복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구원의 근원처럼 붙드는 순간, 하나님께 향해야 할 신뢰가 사람에게 옮겨간다.
지도자의 역할과 공로는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의 권한도 하나님의 뜻과 책임 아래 있어야 한다. 사람을 존중하되 절대적인 권위를 주지 않는 것이 바른 관계를 지키는 길이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넘겼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판단이 맞는 것은 아니다. 그의 가족까지 같은 권한을 가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사사기 8장 22절부터 35절을 묵상하며, 받은 도움에는 분명히 감사하되 중요한 결정은 감사와 별개의 기준으로 판단한다.
고마움 때문에 상대의 모든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감사와 복종을 구분할 때 관계를 건강하게 지키고 공동체의 판단도 바로 세울 수 있다.
도움을 준 사람에게 감사하되, 그 사람이 맡을 권한의 범위와 책임은 따로 정한다. 과거의 공적을 현재의 모든 결정에 대한 면책 사유로 사용하지 않는다.
감사는 공로를 인정하지만, 그 공로가 무제한의 지배권이 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23절에서 기드온은 자신과 아들의 통치를 거절하고, 여호와를 통치의 주체로 제시한다. 이 선언은 뒤따르는 행동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독자는 이후의 금 수집과 에봇 제작을 이 고백에 비추어 읽게 된다.
하나님의 통치는 지도자의 책임을 없애지 않고, 그 책임의 기준을 세운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말은 지도자가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과 욕망이 최종 기준이 아님을 인정하는 고백이어야 한다.
하나님을 따른다는 고백은 말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생각과 말과 행동이 같은 방향을 향해야 한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인정한다면, 실제 선택에서도 자신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워야 한다.
기드온의 선언은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올바른 방향을 가리킨다. 그러나 말로는 하나님을 높이면서 실제 행동에서는 다른 사람이나 힘, 욕망을 중심에 둔다면 고백과 삶이 어긋난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삶에 드러나려면 자신이 세운 계획도 절대적인 것으로 붙들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는 것이 드러날 때에는 생각과 말에 그치지 않고 실제 선택과 행동까지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옳은 원칙을 말하는 것과 그 원칙에 맞게 결정하는 것은 다르다. 내 계획이 원칙과 충돌할 때에도 계획을 고집한다면, 말과 행동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간다.
진정으로 원칙을 존중하려면, 내 방식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 맡겼다”고 말하는 일 하나를 고른다. 그 일에서 자신의 결정을 실제로 수정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인지 적는다.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는 고백은, 자신의 결정도 그 통치 아래 두는 행동으로 드러난다.
사사기 8장 24~27절
: 자발적으로 모은 금이 공동체의 올무가 되다
24절에서는 요청하는 사람이 바뀐다. 앞에서는 백성이 기드온에게 통치를 요청했지만, 이제 기드온이 백성에게 금을 요구한다.
25절은 백성의 적극적인 참여를 보여 준다. 이후의 잘못된 결과는 지도자 한 사람의 결정만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제공한 자원으로 만들어진다.
자발성은 강요가 없었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행위의 방향까지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본문은 백성의 기쁜 참여와 에봇의 올무를 이어 놓는다. 좋은 참여 방식과 바른 목적은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재물은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니다. 같은 돈이라도 어디에,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람을 살리는 데 쓰일 수도 있고, 욕망과 권력을 키우는 데 쓰일 수도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금을 기꺼이 내놓았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용까지 옳았다고 할 수는 없다. 바친 마음뿐 아니라, 그 재물이 실제로 무엇을 만들었고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소유를 내려놓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모인 재물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되는지 끝까지 살피고,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책임 있게 관리해야 한다.
기쁜 마음으로 돈과 시간을 내놓아도, 그것이 잘못된 일을 키우는 데 쓰일 수 있다.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 좋은 결과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무언가를 돕기 전에는 목적과 사용 방식을 확인한다. 참여한 뒤에도 처음 약속한 방향대로 사용되는지 살핀다.
헌금, 후원, 공동사업에 참여할 때, 선한 명분뿐 아니라 사용 목적, 결정권자, 결과 확인 방법을 살핀다.
기꺼이 내놓는 마음은 귀하지만, 그 마음으로 무엇을 만드는지도 책임져야 한다.
26절에서 서술자는 금의 양과 왕실 장식들을 자세히 나열한다. 이 목록은 승리의 규모를 보여 주면서, 다음 절에서 그 재물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하게 한다.
부를 얻은 사실과 그 부를 올바르게 사용한 사실은 다르다. 본문은 재물 자체를 악이라고 하지 않지만, 큰 승리로 얻은 자원이 신앙적 위험을 확대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많이 베푼다고 해서 반드시 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것을 충분히 주는 힘과, 목적에 맞게 한계를 세우며 사용하는 판단은 함께 가야 한다.
상대의 실제 필요를 살피지 않으면 많은 자원도 오히려 잘못된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본문에서도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금을 모았느냐가 아니다. 그 금을 누구를 위해, 어떤 목적과 기준으로 사용할지가 더 중요하다. 자원이 많아질수록 그것을 자신의 권위와 위엄을 드러내는 데 사용할 위험도 커진다.
따라서 재물의 사용 기준은 규모나 소유자의 욕망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뜻과 실제 필요에 맞는지 살피고, 필요한 만큼 책임 있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쓸 수 있는 돈이 많아졌다고 해서, 더 크게 만드는 일이 항상 옳지는 않다. 규모를 키우다 보면 원래 돕고자 했던 사람보다 사업이나 지도자의 명성이 앞설 수 있다.
필요한 만큼 사용하고, 남는 자원을 어디에 돌릴지 따로 판단한다. 크기보다 목적에 맞는 사용을 우선한다.
성과가 커졌을 때 예산과 권한도 자동으로 확대하지 않는다. 새로 확보한 자원이 처음의 목적에 실제로 필요한지 다시 확인한다.
풍요의 가치는 얼마나 모았는가보다, 무엇을 위해 사용했는가에서 드러난다.
27절은 단락의 가장 분명한 부정적 평가다. 기드온이 만든 물건이 백성의 그릇된 숭배를 불러오고, 제작자와 그의 집에도 덫이 된다. 승리의 결과물이 신앙적 위험으로 바뀐다.
하나님께 향해야 할 마음이 어떤 물건이나 제도에 쏠리기 시작하면, 그것이 아무리 종교적인 모습이라도 사람을 잘못된 길로 이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물건이 얼마나 비싸고 아름다운지가 아니라, 백성이 결국 누구를 믿고 따르게 되었는가이다.
기드온에게 좋은 의도가 있었더라도, 그 의도만으로 실제 결과에 대한 책임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우상숭배의 문제는 하나님께 의존하는 대상에게 하나님과 별개의 힘이 있는 것처럼 믿는 데서 시작된다.
본래 도움을 주거나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수단도 그 자체가 신뢰와 복종의 중심이 되면 본래 목적에서 벗어난다.
에봇도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문제는 물건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붙드는 권위로 바뀌었다는 데 있다.
하나님을 가리켜야 할 수단이 오히려 하나님보다 앞에 놓이면, 사람들은 수단을 목적처럼 붙들게 된다.
이를 바로잡으려면 종교적인 상징을 더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통해 도움을 받는지와 누구를 궁극적으로 믿고 따르는지를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처음에는 중요한 가치를 기억하려고 만든 제도나 상징이, 나중에는 그 자체를 지키는 일이 될 수 있다. 목적을 위해 만든 것을 오히려 목적보다 앞세우는 것이다.
그럴 때에는 오래되었다는 이유나 많은 사람이 따른다는 이유로 유지하지 않는다. 지금도 원래의 목적에 도움이 되는지 살피고, 목적을 가린다면 바꾸거나 내려놓는다.
신앙생활에서 없애거나 바꾸기 어렵다고 느끼는 형식 하나를 살핀다. 그 형식이 말씀에 대한 순종을 돕는지, 익숙함과 권위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지 구분한다.
하나님을 향하게 하려던 것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중심이 되면, 그것은 올무가 된다.
사사기 8장 28절
: 미디안의 굴복과 기드온 시대의 평온
28절에서 서술자는 에봇의 잘못을 기록한 뒤에도, 미디안의 패배와 평온을 인정한다. 부정적인 종교 평가와 긍정적인 군사, 사회적 평가를 동시에 유지한다.
하나님의 구원은 지도자의 모든 선택을 승인한다는 도장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평온을 감사하면서도, 그 평온 속에서 생긴 잘못은 바로잡아야 한다.
잘못된 욕망을 억누르는 것과 그 욕망의 방향 자체가 바뀌는 것은 다르다. 잘못된 행동을 멈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마음과 선택의 기준까지 바로잡혔다고 볼 수는 없다.

미디안이 더 이상 이스라엘을 위협하지 못하게 된 것과,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충실하게 돌아선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외부의 문제가 사라져도 사람들의 욕망과 예배의 방향은 여전히 점검해야 한다.
평온한 시기는 모든 문제가 끝났다는 신호가 아니다. 오히려 위기 때문에 미뤄 두었던 책임을 다시 살피고, 생각과 행동과 믿음의 방향을 바로 세울 기회가 된다.
갈등이 잠잠해졌다고 해서 갈등을 만들던 이유까지 없어졌다고 볼 수는 없다. 당장 충돌하지 않는 상태와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진 상태는 다르다.
상황이 안정되었을 때, 이전에 미뤄 둔 대화와 기준 정비를 시작한다. 조용하다는 이유로 필요한 점검을 생략하지 않는다.
사사기 8장 22절부터 35절을 묵상하며, 일이 잘될수록 성과만 보지 않고 관계와 재정, 말과 행동이 서로 맞는지도 함께 살핀다.
좋은 결과가 나왔다는 이유로 과정에서 생긴 잘못까지 괜찮다고 넘기지 않는다. 외적인 평온을 감사하되, 그 평온이 모든 선택의 정당성을 증명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사기 8장 29~30절
: 커진 가문과 아비멜렉의 등장
29절은 전쟁터와 공동체에서 기드온의 집으로 시선을 옮긴다. 30절은 그의 가문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소개한다. 세습 통치를 거절한 말 뒤에, 큰 가문의 현실이 이어진다.
공적 사역의 성공은 가정 안에서의 신앙 계승을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후손이 많다는 사실과 그 후손들이 하나님을 알고 책임 있게 살아간다는 사실은 서로 다른 문제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만으로 믿음과 판단이 저절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좋은 가르침이 다음 세대에 전해지려면,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하고 실제로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전달하는 사람은 한 번 말하는 데서 끝내지 않고, 상대의 수준과 상황에 맞게 설명을 조정해야 한다. 동시에 사랑과 책임을 가지고 관계를 계속 이어 가야 한다.
내용이 아무리 맞아도 관계가 끊기거나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다음 세대의 삶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따라서 자녀와 후손이 많아졌다는 사실만으로 믿음이 계승되었다고 볼 수 없다. 신앙의 계승은 하나님의 뜻과 삶의 기준이 이해되고 받아들여져 실제 선택으로 이어질 때 이루어진다.
오래 함께 살았다고 해서 서로의 가치관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자녀나 후배가 내 곁에 있었다는 이유로,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까지 배웠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상대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고, 직접 판단할 기회를 준다. 무엇을 배웠는지 듣고 확인해야 다음 사람에게 남는다.
가족이나 후배에게 일을 맡길 때 결과만 요구하지 않는다.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스스로 선택한 이유를 말하게 한다.
가문은 출생으로 이어지지만, 믿음과 책임은 설명과 본보기와 실천으로 전달된다.
사사기 8장 31~32절
: 기드온의 죽음과 조상 묘실에의 장사
31절은 많은 아들 가운데 아비멜렉을 따로 소개한다. 그의 어머니가 세겜에 있다는 정보는 다음 장의 정치적 연결을 준비한다.
32절은 기드온의 생애를 마무리한다. 그러나 아비멜렉을 먼저 소개했으므로, 기드온의 죽음은 모든 문제가 끝나는 결말이 아니라 다음 이야기의 출발점이 된다.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남는 것은 이름이나 가문의 지위만이 아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신뢰하고 경외하며 사랑했는지가 다른 사람의 삶에 이어질 때 더 깊은 영향이 남는다.
기드온을 완전한 신앙인의 기준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혈통이나 명성의 계승과 살아 있는 믿음의 계승을 구분하는 데 있다.
후손이 이름과 지위를 이어받아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삶의 기준이 이어지지 않으면 신앙이 계승되었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묵상의 초점은 죽은 뒤 얼마나 오래 기억될 것인가에 있지 않다. 지금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믿음과 선택의 기준을 보여 주고 있으며, 그것이 그들의 실제 삶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내 이름이 오래 기억되는 것과 내가 중요하게 여긴 삶이 이어지는 것은 다르다. 직함이나 가족의 명성은 남아도, 실제 판단과 행동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다음 사람에게 남길 것은 나를 높이는 이야기만이 아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거절해야 하는지 보여 주어야 한다.
자신이 맡은 역할에서 물러난 뒤에도 남아야 할 기준 하나를 정한다. 자신의 명성보다 그 기준을 다른 사람이 이해하고 실천하도록 돕는다.
좋은 유산은 이름을 남기는 데서 끝나지 않고, 다음 사람의 책임 있는 선택으로 이어진다.
사사기 8장 33~35절
: 바알 숭배의 재개와 하나님·기드온 가문에 대한 망각
33절에서 기드온의 죽음 뒤에 백성은 바알 숭배로 돌아간다. 지도자의 존재 아래 유지되던 질서가 그의 부재 이후 지속되지 못한다. 다만 백성이 선택의 주체로 명시되므로, 모든 책임을 죽은 지도자에게 돌릴 수는 없다.
믿음은 존경하는 지도자의 존재에만 기대어 유지되어서는 안 된다. 지도자가 사라진 뒤에도 공동체는 자신이 누구를 섬길지 선택할 책임이 있다.
또한 ‘언약’이라는 종교적 이름이 붙어 있다고 해서 그 관계가 하나님께 충실한 것은 아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데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스스로 옳고 그름을 결정할 수 있는 권위를 세우고, 그 권위에 자신을 맡기는 것도 같은 문제를 만든다.
“자기들의 신으로 삼았다”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이 선택한 대상을 최종 기준으로 세웠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 자신의 욕망과 선택을 정당화해 줄 대상을 찾게 된 것이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다스리셔야 할 자리에 사람이 만든 권위가 들어선다.
이를 바로잡으려면 새로운 종교적 대상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선택까지 하나님의 뜻 아래 두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승인해 주는 대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면 자신의 선택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결정을 점검해 주는 기준보다, 이미 정한 결정을 승인해 주는 권위를 찾을 수 있다. 겉으로는 가르침을 따르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듣고 싶은 말만 선택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불편한 지적도 검토한다. 믿고 따르는 기준이라면, 내 욕심과 충돌할 때에도 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사사기 8장 22절부터 35절을 묵상하며, 존경하는 사람이 곁에 없거나 지시하지 않아도 지켜야 할 믿음의 기준을 분명히 한다.
누군가의 존재에 의존하지 않고, 내가 맡은 책임은 스스로 계속 지켜 나간다. 누군가가 곁에 있을 때의 순종보다, 그가 없을 때에도 유지되는 충성이 중요하다.
34절은 구원의 주체를 다시 밝힌다. 22절에서 백성이 기드온에게 돌렸던 구원의 공로를, 서술자는 하나님께 연결한다.
35절은 동시에 기드온이 실제로 베푼 선행을 인정한다.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은 백성은 자신들을 도운 사람의 가문에도 신의를 지키지 않는다.
두 절은 “하지 아니하며—하지도 아니하였더라”라는 부정으로 병행한다. 하나님에 대한 망각과 사람에 대한 불성실이 나란히 놓인다.
또한 “건져내신”과 “베푼 모든 은혜”는 백성의 현재 행동과 과거에 받은 도움을 대조한다.
성경적 기억은 과거의 정보를 떠올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받은 구원이 지금의 예배와 관계적 책임에 영향을 주어야 한다.
또한 기드온의 에봇 제작은 비판받아야 하지만, 그 잘못이 백성의 배신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공로는 면죄부가 아니고, 과오는 배신의 허가증이 아니다.
감사는 받은 도움을 인정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은혜를 기억한다면 실제로 선하게 대하는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상대의 잘못을 판단해야 할 때, 그 판단이 과거의 도움과 선행까지 지워 버리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을 바르게 대하려면 잘못은 잘못대로 분명히 판단하고, 받은 도움은 도움대로 인정해야 한다.
과거의 선행 때문에 현재의 잘못을 무조건 감싸서도 안 되고, 현재의 잘못 때문에 이전의 모든 선행을 부정해서도 안 된다.
필요한 것은 사실을 구분하여 책임 있게 판단하는 태도이다. 잘못에는 필요한 책임을 묻되, 받은 은혜는 잊지 않고 그에 맞는 선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실망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예전에 도와준 사실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로 지금의 잘못을 덮어 줄 필요도 없다.
잘못한 일과 고마웠던 일을 따로 기억한다. 비판할 것은 분명히 비판하되, 받은 도움을 부정하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해를 끼치지 않는다.
갈등 중인 사람에게 받은 도움과 그 사람이 잘못한 일을 각각 적는다. 두 사실을 섞지 않은 상태에서, 지켜야 할 경계와 표현할 감사를 결정한다.
분별은 잘못을 숨기지 않으며, 감사는 받은 선행을 지우지 않는다.
사사기 8장 22절부터 35절 묵상을 마무리하며…
하나님을 주인으로 고백한다면, 성공 이후에도 자신의 선택을 점검하고 받은 은혜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
기드온은 이스라엘을 구하는 데 쓰임받았지만, 그가 만든 에봇은 공동체의 올무가 되었다. 백성 역시 그의 잘못을 이유로 하나님을 잊거나 기드온의 집을 배신할 수 없었다.
오늘은 하나님을 위한다는 이유로 붙들고 있는 일 하나를 점검한다. 그 일이 실제로 누구를 돕는지 살피고, 자신의 방식이 목적을 가린다면 수정한다.
또한 실망한 사람에게 받은 도움과 그 사람의 잘못을 구분하여, 경계는 지키되 감사까지 지우지 않는다.
[따름&드림]
오늘의 기도
하나님 오늘도 귀한 말씀을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자기 생각과 고집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깨우쳐 주시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따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우리 자신을 위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교묘하게 우상숭배를 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바로잡아 주시옵소서.
세속적인 영향력에 의존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권능만을 겸손하게 따르게 하시옵소서.
우리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하나님의 뜻과 의를 우선하게 하시옵소서.
나의 욕망을 따르는 것보다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더욱 평안하고 자유로운 것임을 깨닫게 하소서.
오늘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묵상 성경 큐티 글쓰기는, 개인적으로 정리한 신앙적 성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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