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1장 29절부터 40절 묵상은 ‘잘못된 약속보다 먼저 지켜야 할 것: 하나님을 향한 열심의 함정‘
대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매일 큐티 성경 묵상 글쓰기, 26/9/26, 916일차,
목차
[살핌]
사사기 11장 29절부터 33절
: 성령의 임재, 입다의 서원, 하나님이 주신 승리
사사기 11장 34절부터 40절
: 딸의 환영, 서원의 실행, 공동체의 애곡
[새김]
잘못된 약속보다 먼저 지켜야 할 것
: 하나님을 향한 열심의 함정
사사기 11장 29절부터 40절 묵상의 배경
앞에서는 상대의 주장을 따져 묻던 입다가, 여기서는 자신이 한 서원을 다시 살피지 않는다. 11장 12~28절에서 그는 사자들을 보내 사건의 역사와 경계를 설명하고, 자신의 주장까지 하나님의 판단 아래 둔다.
그러나 자신의 서원이 딸의 삶을 위협하게 되었을 때에는, 그 말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다시 묻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남의 주장을 분별하는 능력과 자기 판단을 바로잡는 능력은 서로 다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입다는 앞서 아버지의 집에서 쫓겨났다가 이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신이 한 서원 때문에 그 집의 미래가 위협받는다.
가정의 상처가 다시 이어지는 문학적 연결은 분명하지만, 과거의 상처가 그의 잘못된 선택을 반드시 만들어 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상처가 있더라도 자신의 말과 선택을 다시 살피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사기 11장 29절
: 서원보다 먼저 임한 여호와의 영
전쟁에 나서는 입다에게 먼저 여호와의 영이 임하고, 서원은 그 뒤에 나온다. 입다가 무엇을 바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능력을 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힘과 권한을 맡기셨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이후에 내리는 모든 판단까지 옳은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과 사람이 그것을 수행하며 내리는 선택은 구별해야 한다. 은사와 능력을 받았어도, 자신의 말과 행동을 다시 살필 필요가 있다.
오히려 큰 책임을 맡을수록 자신의 판단이 하나님의 뜻과 맞는지 더 신중하게 점검해야 한다.
사람은 어떤 순간에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강해져 잘못된 충동을 누를 수 있다. 그러나 그 한 번의 경험만으로 욕망과 습관이 완전히 바뀌는 것은 아니다.
기도할 때는 절제했던 생각과 충동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나타날 수 있다. 이 원리에서 보면, 특별한 능력을 경험한 순간과 계속 바르게 판단하는 삶은 같지 않다.
하나님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자신의 모든 판단이 옳다는 증거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강한 체험 이후에도 자신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계속 살펴야 한다.
큰 확신을 얻거나 어려운 일을 해냈다고 해서 이후의 판단까지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감이 커질수록 자신의 선택을 더 신중하게 점검해야 한다.
사사기 11장 29절부터 40절을 묵상하며, 자신의 경험이나 성과를 근거로 반대 의견을 막지 않는다.
중요한 약속을 하기 전에는 그 내용이 옳은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따로 살핀다. 하나님께 쓰임받았다는 확신이 자신의 모든 판단을 옳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다는 확신이 커질수록, 자신의 판단을 검토하는 책임도 놓치지 않는다.
사사기 11장 30~31절
: 승리에 조건을 붙이고, 영접하는 이를 제물로 약속한 서원
30절에서 입다는 승리를 조건으로 내걸고, 31절에서는 그 조건이 이루어지면 자신이 무엇을 하겠다고 약속한다. 문제는 그 약속이 자신의 수고나 소유물에만 한정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집에서 자신을 맞으러 나오는 존재의 삶이 그의 서원에 걸린다. 중요한 것은 서원을 얼마나 진지하게 했는지가 아니다. 먼저 그 약속이 하나님께 합당한지, 자신에게 그런 약속을 할 권한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하나님께 헌신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생명과 미래까지 마음대로 결정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더 큰 희생을 약속한다고 해서 더 깊은 믿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참된 헌신은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의 범위를 알고, 다른 사람의 삶을 자기 열심의 대가로 사용하지 않는 데서 드러난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자신의 열정과 결심을 가장 높은 기준으로 삼는 일이 아니다.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 아래 두고, 먼저 무엇이 옳은지 살피는 데서 시작한다.
이 관점에서 입다의 서원은 희생의 크기보다 순서의 문제를 드러낸다. 자신의 결심이 하나님의 명령보다 앞서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기 뜻을 밀어붙일 수 있다.
먼저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자신에게 그 결정을 내릴 책임과 권한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좋은 목적이 있다고 해서 무엇이든 약속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다른 사람이 감당해야 할 희생을 자신의 헌신처럼 말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헌신은 더 큰 대가를 거는 데 있지 않고,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의 범위를 지키는 데 있다.
성과를 얻기 위해 가족이나 동료의 시간, 돈, 진로를 당사자의 동의 없이 약속하지 않는다. 자신이 감당할 헌신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부담을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하나님께 드린다는 명분이 있어도, 자신에게 결정할 권한이 없는 사람의 삶과 미래까지 약속해서는 안 된다.
참된 헌신은 다른 사람의 희생을 대신 정하는 데 있지 않고,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을 감당하는 데 있다.
사사기 11장 32~33절
: 하나님이 주신 승리와 암몬의 항복
32절은 승리의 주체가 여호와이심을 밝히고, 33절은 그 승리가 실제 전투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보여 준다.
그러나 입다가 서원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승리를 주셨다고 말하지 않는다. 결과가 좋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전에 내린 모든 선택까지 옳았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판단은 따로 살펴야 한다. 좋은 결과가 나왔을수록 무엇이 하나님의 은혜였고, 무엇이 인간의 책임이었는지를 구분해야 한다.
어떤 것은 좋은 목적을 위해 바르게 사용할 수 있지만, 해서는 안 되는 행동까지 좋은 의도로 정당화할 수는 없다. 목적이 선하다고 해서 모든 수단이 옳아지는 것은 아니다.
입다의 승리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그 전에 했던 서원과 판단까지 모두 옳았던 것은 아니다. 성과가 과정의 잘못을 없애 주지는 않는다. 무엇을 이루었는지와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는 따로 살펴야 한다.
일이 잘되었을수록 결과만 보지 말고 그 과정에서 한 약속과 행동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목표가 좋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선택까지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성과를 확인하는 일과 과정의 잘못을 점검하는 일은 따로 해야 한다. 목표를 이루었더라도 누군가의 동의나 안전, 정당한 몫을 침해했다면 그 부분은 바로잡아야 한다.
사사기 11장 29절부터 40절을 묵상하며, 성공은 감사할 이유가 될 수 있지만 잘못된 선택까지 옳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점을 기억한다.
좋은 결과를 얻었더라도 그 과정의 말과 약속, 행동이 하나님 뜻에 맞았는지는 따로 살핀다. 무엇을 이루었는지와 어떤 방식으로 이루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사사기 11장 34~35절
: 딸의 환영이 아버지의 탄식으로 뒤집히는 순간
34절에서 입다는 자신이 바라던 대로 집에 돌아온다. 딸은 그를 반갑게 맞이한다. 그런데 그 환영이 앞선 서원과 맞물리면서, 기쁨의 행동이 생명을 위협하는 조건이 된다.
딸은 비극을 만든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가 한 서원 때문에 위험에 놓인 사람이다. 하나님께 감사하려는 마음이 있어도, 다른 사람을 자신의 약속을 이루는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딸은 아버지의 소유가 아니다. 본문은 딸의 말과 친구들, 그리고 그가 슬퍼할 시간을 따로 보여 준다. 그는 아버지의 서원에 딸린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삶과 목소리를 가진 한 사람이다.
가족이라도 한 사람의 가치는 그가 맡은 역할로만 정해지지 않는다. 딸을 아버지의 소유나 가문을 이어 가는 수단처럼 볼 수 없다.
가족 안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더라도, 그는 자신의 삶과 미래를 가진 한 사람이다. 사랑과 돌봄은 상대가 나에게 무엇을 해 주는지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임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로 상대의 삶을 내 계획의 일부처럼 마음대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가족에게 부탁할 때 “우리 가족을 위해서”라는 말만 앞세우지 않는다.
그 부탁 때문에 상대가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자신의 생각과 의사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지 먼저 살핀다.
나를 사랑해서 기쁘게 맞이한 사람을, 내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한 대가로 삼아서는 안 된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상대의 삶과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35절에서 입다는 옷을 찢으며 크게 슬퍼한다. 그러나 처음에는 딸이 자신을 괴롭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뒤에서는 자신이 서원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처음에는 자신이 한 말 때문에 생긴 위험을 딸에게 돌리는 모습이 나타난다. 자신의 선택으로 생긴 문제를 피해자의 책임처럼 말해서는 안 된다.
또한 잘못된 약속을 멈추는 것과, 정당한 약속을 함부로 버리는 것은 다르다. 하나님께 드린 약속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시는 일을 계속해서는 안 된다. 약속을 지키는 것보다 먼저, 그 약속 자체가 옳은지 살펴야 한다.
큰 충격과 분노가 생겨도 그 감정이 말과 행동을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된다. 감정이 앞서면 자신이 만든 문제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기 쉽다.
입다의 슬픔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딸을 탓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문제가 자신의 말과 선택에서 시작되었다면 먼저 그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감정을 쏟아내기보다 먼저 위험에 놓인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 상대를 비난하는 대신 자신이 한 말을 돌아보고, 더 큰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이 무리한 약속을 해 놓고 가족이나 동료에게 “너 때문에 곤란해졌다”고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된다.
문제가 자신의 말에서 시작되었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필요한 정정과 손해도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
책임 있는 사람은 잘못된 말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 아니다. 그 말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면 멈추고 바로잡는 사람이다.
사사기 11장 36절
: 아버지의 말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딸
36절에서 딸은 아버지가 하나님께 한 말과 전쟁의 승리를 연결하며, 그 약속대로 자신에게 행하라고 말한다.
그는 아무 말 없이 희생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표현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러나 딸이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아버지의 서원을 옳게 만들지는 않는다.
딸의 용기와 아버지를 향한 마음은 분명히 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희생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처음부터 그 희생을 요구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동의와 정당성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이 장면을 자녀나 신자가 부당한 요구에도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는 교훈으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상대가 받아들였는지보다 먼저, 그 요구 자체가 하나님 뜻에 맞고 정당한지를 살펴야 한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크다고 해서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삶을 무너뜨리는 일이 믿음의 완성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강한 결심만 보여 주는 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삶 속에서 맡겨진 책임을 계속 감당하는 데까지 이어져야 한다.
이 원리를 딸의 마음을 설명하는 근거로 사용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 장면을 읽는 사람이 희생의 크기를 믿음의 깊이와 같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경계하게 한다.
열정이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면, 사람의 생명과 책임보다 희생 자체를 더 높이게 될 수 있다. 헌신이 깊다는 이유로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파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희생할 뜻을 보였다는 사실보다 먼저, 그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 옳은지 살펴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삶에는 살아서 책임을 다하고 사람을 보호하는 일도 포함된다.
상대가 “괜찮다”고 말했다고 해서 계속 부담을 넘겨서는 안 된다.
특히 내가 더 큰 권한을 가진 관계라면, 상대가 정말 자유롭게 거절할 수 있는지, 다른 방법을 제안할 수 있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누군가가 희생을 받아들였다는 사실과, 그 희생을 요구한 일이 옳았다는 것은 다르다. 상대의 마음은 존중하되, 처음부터 그 부담을 요구할 권한이 있었는지는 따로 판단해야 한다.
사사기 11장 37~39절
: 두 달의 애곡과 귀환, 그리고 서원의 실행
37절에서 딸은 두 달 동안 친구들과 함께 지내며 자신이 잃게 될 것을 슬퍼할 시간을 요청한다. 이야기의 중심이 아버지의 서원과 고통에서 딸이 겪게 될 상실로 옮겨간다. 딸은 자신에게 닥친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애도할지 직접 말한다.
본문은 아버지의 괴로움만 보여 주지 않는다. 딸이 잃게 되는 삶과 관계도 따로 들려준다. 신앙적인 이유를 설명한다고 해서 당사자의 슬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언급되었다는 이유로 상실을 빨리 받아들이라고 요구해서도 안 된다. 아픔을 애도할 시간과 자신의 감정을 말할 공간도 존중해야 한다.
누군가의 고통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잃게 되는지 보아야 한다. 딸의 경우에도 아버지의 서원보다 먼저, 그녀가 잃게 될 삶과 관계, 미래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연민은 이유나 명분보다 먼저 고통받는 사람을 바라보게 한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설명하기보다, 그 사람이 무엇을 잃고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야 한다.
좋은 뜻이나 신앙적인 말만 계속하면 정작 당사자의 아픔을 놓칠 수 있다. 그 사람이 겪는 상실을 먼저 듣고 이해할 때, 실제로 어떻게 도와야 할지도 보이기 시작한다.
사사기 11장 29절부터 40절을 묵상하며, 고통받는 사람에게 곧바로 교훈부터 말하지 않는다. 먼저 그 사람이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듣는다.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곁에 있어 줄 사람과 충분한 시간을 마련한다. 다른 사람의 희생을 말하기 전에, 그 사람이 실제로 잃게 되는 삶과 관계를 먼저 바라본다.
진정한 돌봄은 설명을 앞세우는 데 있지 않다. 먼저 상대의 아픔과 상실을 듣는 데서 시작한다.
38절에서 입다는 딸에게 두 달의 시간을 허락한다. 딸은 친구들과 함께 떠나 자신이 잃게 될 것을 슬퍼한다.
하지만 본문에는 입다가 서원을 취소하거나 딸을 보호하기 위해 결정을 바꾸었다는 내용이 없다. 딸에게 슬퍼할 시간을 주었다고 해서 잘못된 결정까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상대의 슬픔을 이해해 주면서도, 그 슬픔의 원인을 방치하는 경우가 있다. 위로하는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진짜 돌봄은 아픔을 들어 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더 큰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잘못된 결정을 멈추고, 상대를 실제로 보호하는 행동까지 이어져야 한다.
상대에게 시간을 주고 슬퍼해도 된다고 말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말로 위로했다고 해서, 자신이 만든 위험까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입다는 딸에게 “가라”고 허락했지만, 그 뒤의 결정이 딸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기록은 없다. 부드러운 말과 실제 행동은 따로 살펴야 한다.
진짜 배려는 상대의 감정을 받아 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위험한 결정을 멈추고, 실제 피해를 줄이는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갈등을 잠시 미뤘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시간을 벌었다면 그동안 잘못된 결정을 다시 살피고, 피해를 입을 사람을 보호하며, 무엇을 바꿀지 구체적으로 정해야 한다.
상대에게 기다릴 시간을 주는 것과, 기다림 끝에 닥칠 피해를 없애는 것은 다르다.
진짜 해결은 시간을 주는 데서 끝나지 않고, 잘못된 결정을 바꾸는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39절에서 딸이 돌아오자 입다는 자신이 서원한 대로 행한다. 그러나 본문에는 하나님이 다시 명령하셨다거나 그 서원을 받으셨다는 말이 없다.
기록되는 것은 끝까지 입다가 한 서원과 입다가 실행한 행동이다. 따라서 그가 서원을 실행했다는 사실을 하나님이 그 행동을 인정하셨다는 뜻으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또한 이 비극을 멈추시는 하나님의 개입도 기록되지 않는다. 본문은 왜 그런 개입이 없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침묵을 그 행동에 대한 승인으로 해석할 근거도 없다.
후에 입다가 믿음의 인물로 언급되더라도, 그의 삶에서 한 모든 행동이 옳은 것은 아니다. 그의 믿음을 인정하는 것과 딸을 향한 서원을 정당화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잘못된 말을 끝까지 실행하는 데 있지 않다. 이미 약속했더라도 그 내용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다른 사람을 해친다면 멈춰야 한다. 잘못을 인정하고 방향을 바꾸는 것이 더 책임 있는 행동이다.
이미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고 체면이 걸려 있어도, 잘못된 선택이라면 멈춰야 한다. 실수를 끝까지 밀어붙이기보다 더 큰 피해를 막고, 그동안 생긴 책임을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
이것은 입다가 선택하지 않은 길을 돌아보며, 잘못된 약속을 지키는 것보다 사람의 생명을 지키고 책임 있게 바로잡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자신이 한 말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해로운 결정을 계속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공개적으로 약속한 일이라도 잘못이 드러나면 이유를 설명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생긴 손해와 책임은 결정한 사람이 감당해야 한다.
자신의 실수를 약한 사람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 잘못된 결정을 끝까지 지킨다고 해서 그 결정이 옳은 것은 아니다.
사사기 11장 40절
: 이름 없는 딸을 해마다 기억하는 이스라엘의 딸들
40절에서 입다의 딸은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그의 죽음은 공동체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딸들은 해마다 그를 기억한다.
본문의 마지막 시선은 전쟁에서 이긴 입다의 명예보다, 그 승리 뒤에서 희생된 딸에게 향한다. 공동체가 성과와 성공만 기억하면, 그 과정에서 상처 입고 사라진 사람은 쉽게 잊힌다.
이 결말은 큰 승리가 있었다고 해도 한 사람의 상실까지 덮을 수 없음을 보여 준다. 무엇을 이루었는지만 기록해서는 안 된다. 그 과정에서 누가 희생되었고 무엇을 잃었는지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마음속 생각에만 머물지 않고, 실제 말과 행동과 생활 속에서 드러나야 한다. 따라서 슬픈 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책임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 기억이 오늘의 선택과 행동을 바꾸는 데까지 이어져야 한다. 입다의 딸을 해마다 기억하는 일도 단순히 슬퍼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누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함께 이야기하고, 비슷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잘못된 판단과 행동을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기억은 과거를 떠올리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그 일을 잊지 않고, 오늘의 선택을 더 책임 있게 바꿀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책임이 된다.
공동체의 성과를 기록할 때는 누가 어떤 부담과 손실을 감당했는지도 함께 남긴다.
아픈 일을 기억하는 자리도 필요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고 같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잘못된 결정과 관행을 바꿔야 한다.
공동체의 진실한 기억은 성공만 남기는 일이 아니다. 그 성과 뒤에서 상처 입고 잃어버린 사람도 함께 기억하는 것이다.
사사기 11장 29절부터 40절 묵상을 마무리하며…
본문은 하나님이 주신 승리와 입다가 만든 비극을 구분해서 보게 한다.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했고, 하나님은 전쟁에서 승리를 주셨다.
그러나 서원과 그 실행은 입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다.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그 과정의 모든 선택까지 옳았던 것은 아니다.
사사기 11장 29절부터 40절을 묵상하며, 한 번 한 약속이라고 무조건 밀어붙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삶과 미래를 동의 없이 약속했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는다.
상대가 받아들이거나 아무 말이 없더라도 부당한 부담을 계속 넘기지 않는다. 체면을 지키는 것보다 피해를 막고 책임을 감당하는 일을 먼저 선택한다.
[따름&드림]
오늘의 기도
하나님 오늘도 귀한 말씀을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이유로, 교만하지 않게 하소서.
항상 하나님의 뜻 앞에서 겸손한 우리가 되게 하소서.
자신의 열심을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하지 않게 하시고.
누군가의 말로 다른 사람이 위험에 놓였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돌이킬 수 있게 하소서.
개인의 체면을 내려놓게 하시고, 오로지 하나님의 뜻과 의를 우선하게 하시옵소서.
공동체라는 명분으로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고, 한 사람의 삶을 보호하게 하소서.
오늘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묵상 성경 큐티 글쓰기는, 개인적으로 정리한 신앙적 성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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