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편1절~6절,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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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큐티 성경 묵상 글쓰기, 26/7/1, 829일

오늘의 성경 큐티 묵상에서는 시편:1편1절~6절,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시편 1편이 말하는 정체성의 힘!

대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살핌]

○ 시편: 1편 1~3절

: 말씀에 뿌리내린 복 있는 사람

○ 시편: 1편 4~6절

: 뿌리 없는 악인의 길과 하나님의 최종 판단

[새김]

○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 시편 1편이 말하는 정체성의 힘!

시편 1편은 첫 구절부터 아주 흥미롭다. 게다가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치밀한 대칭구조도 큰 인상을 준다. 또한 인간의 속성을 상당히 과학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1절을 보면, 악인들, 죄인들, 오만한 자들의 표현이 나온다. “악인들”의 히브리어 원어는 רְשָׁעִים, 레샤임이다. 이것은 법정적, 언약적 의미가 강한 단어로, 하나님과 이웃 앞에서 바른 관계를 깨뜨리는 사람들을 말한다. 즉, 하나님과는 정 반대의 방향을 향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죄인들”은 חַטָּאִים, 핫타임이다. 이것은 목표에서 빗나간 삶을 지속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악인들”은 생각에 그쳤다면, “죄인들”은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오만한 자들” 또는 “조롱하는 자들”은 לֵצִים, 레침이다. 단순히 농담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혜와 경건을 비웃고 진지한 회개를 조롱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기 혼자 죄를 짓는 것을 넘어서, 타인에게 피해를 끼친다.

또한 악한 영향이 < 생각(꾀) – 행동(길) – 정체성(자리) > 의 3단계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심지어 행동의 모습을 표현하는 < 걸었다, 따라갔다 ( הָלַךְ 할라크 ) – 섰다, 머물렀다 ( עָמָד 아마드 ) – 앉았다, 정착했다 ( יָשָׁב 야샤브 ) > 에서도 죄의 진행을 보여준다.

정리하자면 < 악인들 – 죄인들 – 오만한 자들 > / < 꾀 – 길 – 자리 > / < 따르다 – 섰다 – 앉았다 > 표현들로, 죄인의 변화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1절이 죄인의 변화를 보여준다면, 2절에서는 복있는 사람의 변화를 보여준다. 다만, 단어의 표현을 주의깊게 보아야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다. 1절의 내용을 보자면, 복 있는 사람이 악을 피하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2절을 자세히 보면, 악을 피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말씀을 너무나 좋아하는 상태에 있다보니, 악에 대해 무관심한 상태라고 봐야한다.

“즐거워하여”의 원어는 חֶפְצוֹ, 헤프초이다. 기본적으로 “그의 기쁨, 그의 바람, 그의 즐거움”이라는 뜻이다. 즉 말씀을 억지 의무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끌리고 사랑하는 대상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묵상하다”는 יֶהְגֶּה, 예흐게이다. 이 동사는 조용히 생각하는 것만이 아니라, 낮은 소리로 읊조리고 되새기는 행위를 포함한다. 고대의 묵상은 눈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입과 귀와 마음이 함께 참여하는 행위였다.

“주야로”는 יוֹמָם וָלָיְלָה, 요맘 바라이일라이다. 낮과 밤이라는 양극을 들어 전체 시간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문자적으로 24시간 계속 성경만 읽는다는 뜻이라기보다, 삶의 리듬 전체가 하나님의 가르침에 의해 형성된다는 뜻이다.

이 표현들은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 떠올리게 한다. 사랑에 빠지면,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게다가 생각과 말과 행동이, 온통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서 움직인다. 복있는 사람의 상태가, 바로 이런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보통은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거꾸로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반대된 것들에 익숙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악한 습관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어려운 것이다. 하나님 말씀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1절과 2절을 비교해보면서, 재미있는 발견이 하나 더 있다. 1절에는 세 번의 부정이 있고, 2절에는 하나의 긍정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것이, 금욕이 아니라 기쁨의 방향에 있음을 보여 준다.

악을 피하는 힘은 단순한 의지력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더 큰 기쁨이 있어야 작은 유혹을 이긴다. 시편 1편에서 그 더 큰 기쁨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 묵상은 복을 얻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사는 방식이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외부 규정으로만 느끼지 않는다. 그것을 자기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이 있다. “여호와의 율법”이 “그의 율법”으로 표현된다는 점이다.

이 표현을 자세히 보자면, 처음에는 “여호와의 율법”이지만 사람이 그것을 깊이 배우고 수고하면 어떤 의미에서 “그의 율법”이 된다고도 볼 수 있다. 사람이 수고하여 익힌 뒤에는 하나님 말씀이, 그의 삶에 내면화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말씀이, 처음에는 내 밖에 있는 하나님의 명령처럼 들린다. 하지만 묵상과 순종을 통해 내 안의 기쁨과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이다. 말씀 묵상은 단순히 “성경 많이 읽기”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묵상은 말씀을 반복해서 마음에 두고, 하루의 선택과 감정과 언어를 그 말씀 아래 가져가는 것이다.

3절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히브리어 원어에서“나무”는 עֵץ, 에츠이다. 성경에서 나무는 생명, 안정, 열매, 뿌리, 지속성을 상징한다. “심은”은 שָׁתוּל, 샤툴이다. 단순히 우연히 자란 나무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심긴 나무라는 뉘앙스가 있다.

“시냇가” 또는 “물길들”은 פַּלְגֵי מָיִם, 팔게 마임이다. 자연 하천이라기보다 물이 갈라져 흐르는 수로, 관개수로의 이미지를 갖는다. “형통하다”는 יַצְלִיחַ, 야츨리아흐이다. 이 단어는 단순한 경제적 성공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 단어들의 뜻으로 보자면, 하나님의 의지로 생명력을 넣어주신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이 결국 참된 결실을 맺는다는 뜻이다.

“그는 … 하리로라(그는 … 같을 것이다)”에 해당하는 וְהָיָה, 베하야는 결과적 의미를 갖는다. 1~2절의 삶이 3절의 상태로 이어진다는 흐름이다. “그 열매를 낸다”는 표현은 יִתֵּן, 이텐, 곧 “준다, 낸다”이다.

열매는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공급이 있을 때 때에 맞게 나온다.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다”는 것은 항상 화려한 성과만 있다는 뜻이 아니다. 잎은 열매보다 덜 중요해 보이지만, 나무의 생명 상태를 보여 준다.

이 단어들의 뜻으로 보자면, 사소하거나 평범한 삶이라도 항상 생명력이 넘치는 상태에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모든 일이 다 형통하다고 하면,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즉, 부와 명예, 성공을 생각하기 쉽다. 물론 그런 것들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항상 하나님과 함께하며 누릴 수 있는 생명력과 평온함이다. 이것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진정한 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서 정반대인 악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렇지 아니함이여”는 לֹא־כֵן, 로 켄이다. “그렇지 않다”라는 짧고 강한 부정이다. “겨”는 מֹּץ, 모츠이다. 곡식에서 알맹이를 분리하고 남은 껍질, 곧 바람에 쉽게 날아가는 가벼운 찌꺼기다.

“바람”은 רוּחַ, 루아흐이다. 루아흐는 하나님의 영과 바람의 의미가 있다. 바람은 겨의 무게 없음과 불안정함을 드러낸다.

이 구절에서는 복있는 자에 비해서, 강한 부정의 표현으로 악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뿌리 깊은 나무에 비해, 바람에 날리는 겨를 비유한다.

“바람이 그것을 몰아낸다”에서 동사는 תִּדְּפֶנּוּ, 티드페누로, “그것을 몰아가다, 흩어 버리다”라는 의미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주어가 바람이고 목적어가 겨라는 사실이다.

악인은 스스로 움직이는 주체처럼 보이지만, 바람에 밀려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 없는 악인의 자유로운 모습은, 실제로 흔들림과 떠밀림인 것이다. 게다가 루아흐는 바람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영이라는 의미가 있다. 즉, 하나님의 영이 악인을 날려버리는 것이다.

나무와 겨의 대조도 인상적이다.

나무는 뿌리내리다. 겨는 떠밀리다.

나무는 열매 맺다. 겨는 비어 있다.

나무는 물가에 머물다. 겨는 바람에 흔들리다.

나무는 심기다. 겨는 흩어지다.

결국 악인의 문제는 단지 나쁜 행동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뿌리와 알맹이가 없는 삶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1절에서 복 있는 사람은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았다. 5절에서 죄인들은 “심판에서 서지” 못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반전이다. 지금 어디에 서는지가 마지막에 어디에 설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개역개정에서는 시편 1편 6절에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라고 나온다. 하지만 히브리어 원어에서는 ‘여호와께서 의인의 길을 아신다’고 나온다.

“아신다”는 יוֹדֵעַ, 요데아이다. 히브리어에서 “알다”는 단순한 정보 인식만이 아니라 관계적 돌봄, 인정, 관심, 선택을 포함한다. 게다가 “여호와께서 아신다”에서 יוֹדֵעַ는 분사형이다. 지속적이고 현재적인 앎을 나타낸다.

즉, 하나님은 의인의 길을 한 번 보고 지나치시는 분이 아니라. 계속 주목하고 돌보시는 분이다. 반대로 “악인들의 길은 사라진다”에서 동사 תֹּאבֵד는 미완료형으로, 그 길의 종착이 소멸임을 보여준다.

결국 의인의 길은 하나님께 기억되고 돌봄받지만, 악인의 길은 결국 지속되지 못하고 사라진다.

시편 1편은 인간의 삶을 두 길로 나눈다. 하나는 여호와의 말씀을 기쁨으로 삼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악한 조언, 죄인의 길, 조롱하는 자들의 자리에 자신을 맡기는 길이다.

복 있는 사람은 단지 “나쁜 일을 안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더 깊은 기쁨을 가진 사람이다. 그 기쁨은 여호와의 말씀이다. 그래서 그는 악을 피할 힘을 얻고, 물가에 심긴 나무처럼 살아간다.

반대로 악인은 겉으로 활동적이고 자유로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시편은 그를 겨라고 부른다. 그는 뿌리가 없다. 열매가 없다. 바람에 떠밀린다. 마지막에 두 길의 차이는 하나님의 판단 앞에서 드러난다.

시편 1편의 핵심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 복은 방향의 문제이다. 복은 우연한 행운이 아니라 하나님께 향한 길 위에 있는 상태이다.

● 사람은 자신이 듣는 조언과 머무는 자리로 형성된다. 악은 생각, 습관, 공동체를 통해 점진적으로 사람을 빚는다.

● 말씀은 의인의 생명 공급원이다. 말씀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생명의 물처럼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의 가르침이다.

● 형통은 성공주의가 아니라 결실이다. 말씀에 뿌리내린 삶은 때에 맞는 열매를 맺는다.

● 하나님은 길을 아신다. 하나님은 겉모습보다 삶의 방향을 보시고, 그 길의 최종 운명을 판단하신다.

오늘의 말씀을 현실에 적용해보자.

● 첫째, 내 삶을 형성하는 “조언”을 점검한다. 내가 반복해서 듣는 말, 보는 콘텐츠, 따르는 가치관이 내 길을 만들다.

● 둘째, 말씀 묵상을 의무가 아니라 기쁨의 훈련으로 회복한다. 짧은 본문이라도 매일 읽고, 되뇌고, 오늘의 선택에 연결한다.

● 셋째, 열매의 시간을 존중한다. 시편 1편은 “철을 따라” 열매를 말한다. 하나님은 즉시성과 조급함보다 깊은 뿌리와 때에 맞는 결실을 중요하게 보신다.

[따름&드림]

크신 은혜로 감동을 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말씀을 통해서, 저의 부족함을 돌아보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붙들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새로운 변화 속에서도, 항시 하나님의 보호와 평온과 기쁨 속에 있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어떤 상황 현상 속에서도, 하나님을 떠올리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앞으로 모든 순간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하기를 바라고 원합니다.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고 발견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기쁨이고 축복임을 알게 하소서.

하나님 말씀을 편하게 볼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더욱더 열렬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바라고 원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유튜브 검색 ‘방맹이할머니의 성경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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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편:1편1절~6절까지의 매일 묵상 성경 큐티 글쓰기는 본문을 묵상하며 개인적으로 정리한 신앙적 성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