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9장 46절부터 57절 묵상, 평판보다 먼저 바로잡아야 할 것

사사기 9장 46절부터 57절 묵상은 ‘평판보다 먼저 바로잡아야 할 것: 작은 가담에도 책임이 따른다

대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매일 큐티 성경 묵상 글쓰기, 26/9/22, 912일차,

[살핌]

사사기 9장 46절부터 49절

: 세겜의 피난처를 불태우는 아비멜렉

사사기 9장 50절부터 57절

: 데베스에서의 반전과 하나님의 판결

[새김]

평판보다 먼저 바로잡아야 할 것
: 작은 가담에도 책임이 따른다

사사기 9장 46절부터 57절 묵상의 배경


이 단락은 요담의 경고가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 주며 아비멜렉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아비멜렉은 세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형제들을 죽이고 왕이 되었다. 요담은 그 선택이 결국 아비멜렉과 세겜이 서로를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후 두 편의 관계는 무너졌고, 아비멜렉은 세겜 성읍을 파괴했다.

46절의 “이를 듣고”는 바로 앞에서 일어난 세겜 성읍의 파괴와 이어진다. 뒤따르는 망대 사람들의 죽음과 아비멜렉의 죽음은, 형제들을 죽이는 데 가담했던 사람들에게 그 책임이 돌아오는 과정의 마지막 장면이다.

그러나 아비멜렉이 죽었다고 해서 공동체가 곧바로 회복된 것은 아니다. 다음 장에서 돌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을 구원한다. 해로운 통치가 끝나는 것과, 무너진 공동체가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세우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다.

사사기 9장 46~47절
: 피난처로 모인 사람들과 공격자에게 전달된 정보


46절에서 사람들은 세겜 성읍이 파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보루로 피한다. 47절에서는 그들이 한곳에 모였다는 사실이 아비멜렉에게 알려진다.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피난처와 집결이 오히려 공격자가 이용할 정보가 된다.

이 두 절은 아직 학살 장면을 보여 주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이 어디에 모였는지, 아비멜렉이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를 보여 주며 다음 공격을 준비한다.

피난한 사람들은 보루 안에서 더 이상 움직일 곳이 없다. 반대로 아비멜렉은 그들이 모인 사실을 알게 된 뒤 행동을 시작한다.

피할 곳을 찾아 멈춘 사람들과 그곳을 향해 움직이는 공격자의 모습이 뚜렷하게 대조된다.


거룩함은 종교적인 이름이나 장소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최종 기준으로 삼지 않고, 생각과 행동을 하나님의 뜻 아래 두는 태도이다.

신전이라는 공간이 있다고 해서 그 안의 사람들이 자동으로 보호받거나 그들의 선택이 모두 옳아지는 것은 아니다.

더 거룩해 보이는 이름을 붙이는 것보다, 실제 행동과 결정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를 살펴야 한다. 종교적인 이름을 가진 조직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을 보호한다고 말한다면 실제로 사람을 지키고 잘못된 행동을 막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름만 믿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이름에 맞는 행동과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사람을 보호한다고 말하는 공동체라면 이름이나 지도자의 말만 볼 것이 아니다.

사사기 9장 46절부터 57절을 묵상하며, 위험에 처한 사람이 실제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통로가 있는지 살핀다.

또한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알려진 정보가 다시 그 사람을 위협하는 데 사용되지 않도록 보호되고 있는지도 확인한다.

본문에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한곳에 모였다. 그러나 아비멜렉에게 그 장소는 공격할 사람들의 위치가 한꺼번에 드러난 곳이 되었다.

보호를 위한 공간과 정보가 잘못 사용되면, 오히려 사람을 더 큰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사사기 9장 48절
: 직접 행동하며 신속한 모방을 요구하는 지도자


48절에서 아비멜렉은 명령만 내리지 않는다. 자신이 먼저 도끼로 나뭇가지를 자른 뒤,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따라 하라고 한다.

지도자의 행동은 구성원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보여 준다. 그러나 방법이 분명하다고 해서 그 목적까지 옳은 것은 아니다.

열심과 헌신도 그 자체로 선하지는 않다. 잘못된 목적을 향한 적극적인 행동은 오히려 피해를 더 빠르고 크게 만들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는 얼마나 열심히 행동하는지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그 행동이 누구를 살리고 누구에게 피해를 주었는지, 그리고 그 목적과 방법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사람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마음속의 뜻이 밖으로 드러나는 방식이다. 하나님과 연결된 삶은 겉으로 무엇을 따라 하느냐보다,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를 살피는 데서 드러난다.

본문에서 아비멜렉의 뜻은 명령으로 전달되고, 그가 먼저 행동으로 보여 준 뒤 다른 사람들의 집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지도자가 먼저 행동하거나 많은 사람이 함께 따른다고 해서 그 행동이 옳아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기 전에 그 목적과 방법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판단해야 한다. 명령을 받았다는 사실보다, 무엇을 위해 누구에게 어떤 결과를 만드는 행동인지를 살피는 일이 먼저이다.


사람의 생각은 말과 행동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된다. 앞장선 사람이 잘못된 행동을 보여 주면, 그를 따르는 사람도 같은 잘못에 참여할 수 있다. 누가 먼저 했는지보다, 지금 무엇을 하도록 요구받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본받고 싶은 사람의 행동도 결과만 보지 않는다. 좋은 성과를 냈더라도 그 과정에서 거짓말하거나 다른 사람을 부당하게 배제했다면, 그 방법까지 따라 해서는 안 된다.

솔선수범은 사람을 움직이는 강한 힘이다. 그러나 누군가 먼저 행동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행동이 옳은 것은 아니다.

사사기 9장 49절
: 각자의 참여가 집단 학살로 이어지다


48절에서 시작된 아비멜렉의 명령은 49절에서 실제 행동으로 이어진다. 지도자가 먼저 시작한 행동에 사람들이 하나씩 참여하면서, 결국 많은 사람이 죽는 결과가 생긴다.

각 사람의 역할은 작아 보일 수 있지만, 그 행동이 모이면 큰 피해를 만든다. 세겜 사람들이 이전에 악한 일에 가담했고 그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아비멜렉이 불을 지르고 사람들을 죽인 행동까지 옳은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악한 사람들의 충돌을 심판의 과정에 사용하시는 것과, 그 폭력을 옳다고 인정하시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또 공동체가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진다고 해서, 그 안에서 죽은 모든 사람이 똑같은 죄와 책임을 가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본문은 공동체의 파국을 보여 주지만, 각 개인의 책임까지 모두 같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사람을 제한하고 잘못을 판단하는 힘은, 사람을 살리고 보호하는 목적과 함께 가야 한다. 판단과 통제가 그 목적에서 벗어나면, 질서를 세우는 힘이 사람을 제거하는 힘으로 바뀔 수 있다.

잘못된 힘을 바로잡으려면 더 강하게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를 실행하는 행동부터 멈추어야 한다. 사람을 지키기 위한 판단은 피해를 막아야 하며, 보복과 제거를 계속 확대해서는 안 된다.

잘못을 막기 위한 단호함은 사람을 보호하는 목적 안에 있어야 한다. 상대를 없애는 일이 목표가 되면, 판단과 처벌에 한계가 사라진다.

그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공격이 아니라, 해치는 행동을 중단하는 일이다.


사사기 9장 46절부터 57절을 묵상하며, “나는 작은 역할만 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참여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내가 보낸 정보와 제공한 자원, 덧붙인 말이 다른 사람을 해치는 데 사용되고 있다면, 그 참여를 멈춘다.

각자가 가져온 나뭇가지는 작았지만, 함께 쌓였을 때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빼앗았다.

사사기 9장 50~52절
: 성읍 점령과 망대 피난, 반복되는 방화 시도


50절에서 장소가 세겜에서 데베스로 바뀐다. 아비멜렉의 폭력은 세겜의 학살로 끝나지 않고 다른 성읍까지 이어진다.

그는 데베스를 공격해 성읍을 점령한다. 겉으로 보면 또 한 번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어지는 망대 장면은 성읍을 차지했다고 해서 모든 저항까지 끝난 것은 아니었음을 보여 준다.

계획한 일을 이루고 계속 승리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 행동을 인정하신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56절은 아비멜렉의 성공과 그의 의로움을 분명히 구별한다. 눈앞의 성취보다 그 과정과 목적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를 살펴야 한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이 가장 높은 자리에 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권한과 행동을 하나님의 뜻 아래 두는 것이다.

따라서 성읍을 장악할 힘이 있다는 것과, 자신의 행동에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성공이 계속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옳다고 볼 수 없다. 많은 것을 이루었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 과정과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다른 사람을 움직이고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해서 자신이 판단의 최종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성과가 있어도 방법이 잘못되었다면 멈춰야 한다. 더 얻을 수 있는 것이 남아 있어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면 그 성공을 계속 밀어붙이지 않아야 한다.

최근 잘된 일 하나를 돌아보며 결과와 과정을 따로 살핀다. 좋은 성과를 냈더라도 그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부당한 부담을 주었다면, 결과가 좋았다는 이유로 그 방법까지 정당화하지 않는다.

성읍을 차지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성읍을 공격한 사람이 옳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성공은 행동의 정당성을 증명하지 않는다.


51절에서 사람들은 위험을 피하기 위해 망대로 들어가 문을 닫고, 다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생명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위험과 거리를 벌리기 위한 여러 단계의 대응으로 이어진다.

이 망대의 높은 곳은 곧 한 여인이 아비멜렉에게 맞서는 자리로 바뀐다. 사람들이 피하려고 선택한 공간의 구조가 사건의 방향을 바꾸는 데 실제로 사용된다.

본문은 위험을 피해 도망하고 문을 닫는 행동을 잘못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따라서 신앙적 책임을 다하는 일과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일을 서로 반대되는 선택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사람을 막고 제한하는 힘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경계가 사람을 지키고 생명을 보호하는 목적과 함께 가는가이다.

이 관점에서 닫힌 문은 단순히 누군가를 밀어내는 장벽이 아니다. 위험한 접근을 막아 안에 있는 사람을 보호하는 경계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누가 들어오지 못하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그 경계를 통해 누구를 지키려 하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모든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은 아니다. 누군가를 해칠 수 있는 행동은 막아야 한다. 경계를 세울 때는 체면이나 통제권을 지키는 것보다 사람의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위험한 상황에 계속 머무는 것을 책임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필요한 경고와 보고는 하되, 거리를 두고 도움을 요청하며 안전한 장소를 확보하는 일도 함께 준비한다.

사람을 지키는 책임에는 위험에 맞서는 것만이 아니라, 필요할 때 물러나고 해로운 접근을 막는 행동도 포함된다.


52절에서 아비멜렉은 세겜에서 사용했던 방법을 다시 쓰려 한다. 망대 안의 사람들을 끌어내기보다, 그들이 있는 곳 자체를 불태우려 한다.

그러나 본문은 그 계획이 성공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비멜렉이 불을 지르려는 순간, 다음 절에서는 오히려 그 자신이 공격을 받는다. 앞에서는 그의 뜻대로 일이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번에는 계획이 끝까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장면은 사람의 의지와 계획이 사건의 마지막 결론을 결정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아비멜렉이 무엇을 하려 했는가보다, 결국 그의 행동이 어떤 결말을 맞는지가 중요하다. 이 반전은 뒤에 나오는 하나님의 최종 판단을 준비한다.


진정한 돌이킴은 잘못을 저지를 힘과 기회가 있는데도, 잘못임을 깨닫고 스스로 멈추는 데서 드러난다. 더 이상 할 수 없어서 멈추는 것과는 다르다.

본문에서 아비멜렉은 자신의 폭력을 스스로 멈추지 않는다. 공격을 계속하려 하지만 외부의 힘에 의해 중단된다. 따라서 행동이 멈췄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이 잘못에서 돌이켰다고 볼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악한 행동이 끝났는지가 아니라, 그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 방향을 바꾸었는가이다.


잘못된 감정이나 충동이 남아 있어도, 그것이 생각과 말과 행동을 지배하도록 내버려 둘 필요는 없다. 감정이 생기는 것과 그 감정대로 행동하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따라서 잘못을 멈추기 위해 마음이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화가 남아 있어도 상대를 해치는 말을 보내지 않을 수 있고, 이미 시작한 행동도 중단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감정을 억지로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이 실제 피해로 이어지는 지점을 알아차리고 멈추는 것이다. 감정을 인정하되, 그 감정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게 하지는 않아야 한다.


갈등 중 바로 실행하려는 행동 하나를 멈추고, 그 목적과 예상되는 피해를 먼저 살핀다.

상대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것인지, 내 분노를 풀기 위해 상대를 해치려는 것인지 구분한다.

이전에 효과가 있었던 강한 대응도 다음 상황에서 같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한 번 성공한 방법이라고 해서 계속 옳거나 안전한 방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사기 9장 53~54절
: 이름 없는 여인의 저항과 아비멜렉의 마지막 명령


53절에서는 행동의 중심이 아비멜렉에게서 한 여인에게 옮겨 간다. 앞에서는 아비멜렉이 공격하고 사람들에게 명령했지만, 이제는 그 자신이 공격을 받는다.

본문은 이 여인의 이름이나 지위를 알려 주지 않는다. 대신 그가 한 결정적인 행동을 기록한다. 많은 사람을 움직이고 힘을 행사하던 아비멜렉도 결국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한 사람의 행동으로 계획이 중단된다.

그러나 이 여인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을 받아 행동했다고 본문이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아비멜렉의 죽음이 하나님의 심판이었다는 해석은 뒤의 56~57절에서 분명하게 제시된다.


맷돌은 본래 사람의 삶을 돕기 위해 곡식을 잘게 만드는 도구이다.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맷돌 자체에 특별한 힘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평범한 도구도 어떤 목적에 사용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든다는 점이다.

이 장면을 통해 힘과 능력은 자신을 드러내는 데 쓰이기보다,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방향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다.

지식과 기술도 다른 사람이 실제로 사용할 수 있을 때 도움이 된다. 내가 가진 능력이 나를 돋보이게 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삶을 지키고 돕는 데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말하는 사람의 이름이나 지위가 낮다는 이유로 그 경고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더 가까이에서 위험을 보고 있을 수 있다. 누가 말했는지보다 그 주장에 어떤 근거가 있는지를 먼저 살핀다.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한 여인의 행동이, 수많은 사람을 움직이며 공격하던 아비멜렉의 전진을 멈춘다.


54절에서 아비멜렉은 마지막 순간에도 명령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이 아니라, 자신을 죽이라는 명령이다. 그 이유는 여인에게 죽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마지막 말에는 자신이 저지른 피해를 돌아보는 내용보다,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기억할지에 대한 걱정이 드러난다. 처음에는 그의 명령이 많은 사람의 죽음으로 이어졌고, 마지막에는 그 명령이 자신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마지막 일격을 누가 가했는지를 바꾼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서 그의 행동에 대한 평가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어지는 본문은 아비멜렉이 저지른 악행을 그대로 기록한다.

그의 마음속 모든 생각을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본문에 기록된 마지막 말에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책임을 돌아보는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


자신을 모든 판단의 중심에 두면, 진실보다 자신의 이름과 평판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그러면 잘못을 바로잡기보다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게 할지 설명을 통제하려 한다.

하나님 앞에서 필요한 태도는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까지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을 낮추거나 비하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과 체면보다 하나님의 기준을 앞세우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보일지만 붙들고 있지 않은지 살핀다. 잘못이 있다면 설명을 바꾸는 데 힘쓰지 말고 사실을 인정한다. 평판을 지키기 위한 말보다, 이미 생긴 피해를 줄이고 책임을 다하는 행동을 먼저 선택한다.


잘못을 지적받았을 때,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와 “내가 무엇을 바로잡아야 할까”를 구분한다.

나를 변호하는 설명을 만드는 데 힘쓰기보다, 확인된 잘못을 먼저 멈추고 이미 생긴 피해를 줄이는 행동을 한다.

아비멜렉은 자신이 어떻게 죽을지는 어느 정도 바꾸려 했지만, 자신의 삶과 행동이 어떻게 기록되고 평가될지까지 통제하지는 못했다.

사사기 9장 55절
: 지도자의 죽음과 군대의 해산


55절에서 아비멜렉이 죽자 군대의 행동도 끝난다. 사람들은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거나 공격을 계속하지 않고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그러나 공격이 멈췄다고 해서 잘못을 인정하거나 피해를 바로잡았다는 뜻은 아니다. 본문은 단지 군사 행동이 끝났다는 사실만 기록한다.

한 사람의 죽음과 함께 집단 전체가 흩어진 모습은, 이들의 행동이 아비멜렉에게 얼마나 크게 의존하고 있었는지를 보여 준다. 다만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떠났는지까지 본문이 설명하지는 않는다.

이 공동체의 행동에 대한 판단은 사람들이 흩어진 장면 자체보다, 이어지는 하나님의 판결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잘못된 자리에서 떠났다는 사실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후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실제로 달라지는가이다.

본문은 사람들이 아비멜렉의 죽음 뒤 각자 돌아갔다고만 기록한다. 그들이 회개했다고까지 말하지 않는다. 따라서 단순한 해산을 마음의 돌이킴으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사사기 9장 46절부터 57절을 묵상하며, 잘못된 모임을 떠났다고 해서 책임까지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내가 보탠 잘못된 말을 바로잡고, 관여한 행동을 인정하며, 같은 피해가 다시 생기지 않도록 이후의 선택과 행동을 바꾼다.


부당한 행동에 참여했던 자리에서 떠날 때는, 그 안에서 내가 맡았던 역할도 함께 돌아본다.

참여를 중단하는 데서 끝내지 않고, 내가 퍼뜨린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만든 손해를 줄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정한다.

아비멜렉의 죽음은 사람들의 동원을 끝냈지만, 그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의 책임까지 없애지는 않았다.

사사기 9장 56~57절
: 악행을 되돌리시는 하나님과 요담의 경고의 성취


56절은 아비멜렉의 책임을 분명하게 평가한다. 그가 형제들을 죽인 일은 형제들에게만 저지른 악이 아니라, 아버지와 그 집안 전체에 가한 악으로 기록된다.

57절에서는 세겜 사람들의 책임도 함께 다룬다. 악의 책임이 아비멜렉 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를 지지하고 그의 악행을 도운 공동체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본문은 이 결말을 단순한 우연이나 권력 다툼의 결과로만 설명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피 흘린 악행에 책임을 물으셨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그러나 이 장면을 근거로 모든 재난을 피해자의 죄에 대한 처벌이라고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을 믿는다는 이유로 사람이 자신의 분노와 보복을 하나님의 뜻처럼 실행할 권리를 얻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믿음과, 사람이 자신의 선택에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어떤 사건을 심판의 과정에 사용하셨다고 해서, 그 과정에서 사람이 저지른 악행까지 옳은 것은 아니다.

본문의 결말도 자동으로 작동하는 보복의 법칙처럼 이해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 하나님의 심판 과정에 사용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의 폭력과 잘못이 정당해지거나 책임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보복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행동을 멈추고, 자신이 만든 피해를 인정하며,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몰락을 보고 곧바로 하나님의 벌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먼저 내가 해친 일과 잘못에 가담한 부분을 돌아본다.

확인된 사실을 바로잡고, 피해가 계속되지 않도록 멈추며, 내가 져야 할 책임을 실제로 감당한다.

하나님은 악행을 단순한 성공으로 남겨 두지 않으시고, 그 일을 행한 사람과 함께 가담한 사람에게도 책임을 물으신다.

사사기 9장 46절부터 57절 묵상을 마무리하며…


이 본문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보다, 그 힘을 사용한 행위의 책임을 묻는다. 아비멜렉은 군대를 움직이고 성읍을 점령했지만, 자신의 악행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까지 통제하지 못했다. 세겜 사람들도 지도자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책임 밖에 남지 않는다.

오늘은 갈등 하나에서 내가 지키려는 것이 무엇인지 살핀다. 내 평판을 지키기 위해 사실을 줄이거나 상대를 해치려 했다면, 그 행동부터 멈춘다. 책임 있게 말하고, 필요한 안전을 확보하며, 내가 보탠 잘못을 바로잡는 일까지 함께 계획한다.

[따름&드림]

오늘의 기도


하나님 오늘도 귀한 말씀을 전해주심에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분별없이 지도자를 따르지 않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아무 생각 없이 다수를 따르는 무지한 죄에서 구해주시고.

남들의 시선과 평판보다, 하나님의 책임을 먼저 붙들게 하시옵소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데 있어서, 복수심보다 정의를 우선하게 하시고.

자신 스스로의 생각과 말, 행동을 돌아보게 하소서.

개인의 말과 행동으로 남을 해치기보다, 생명을 살리고 약자를 구하게 하소서.

타인의 몰락을 즐기기보다,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오늘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묵상 성경 큐티 글쓰기는, 개인적으로 정리한 신앙적 성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