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3장 1절부터 11절 묵상은 하나님은 왜 장애물을 남겨 두셨는가: 우상은 자유를 약속하지만 종살이를 남긴다‘
대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매일 큐티 성경 묵상 글쓰기, 26/9/6, 896일차,
목차
[살핌]
사사기 3장 1절부터 6절
: 남겨진 민족과 실패한 시험
사사기 3장 7절부터 11절
: 망각과 종살이, 옷니엘을 통한 구원

[새김]
하나님은 왜 장애물을 남겨 두셨는가
: 우상은 자유를 약속하지만 종살이를 남긴다
사사기 3장 1절부터 11절 묵상의 배경
3장 1~6절은 서론의 결론이며, 7~11절은 첫 번째 사사 이야기의 시작이다.
사사기 2장 20~23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언약을 어겼기 때문에 남은 민족들을 즉시 쫓아내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3장 1~6절은 그들이 왜 남았는지, 이스라엘이 그 환경에서 어떻게 실패했는지를 설명한다.
3장 7~11절은 옷니엘을 첫 사사로 제시한다. 뒤에 등장하는 사사들은 점차 도덕적, 영적 결함을 드러내지만, 옷니엘의 이야기는 부정적인 평가 없이 사사 시대의 구원 구조를 보여 주는 기준형 서사로 기능한다.
사사기 3장 1~2절
: 전쟁을 모르는 세대에게 주어진 시험과 훈련
1~2절에서 하나님이 민족들을 남겨 두신 목적은 두 가지로 제시된다. 하나는 이스라엘의 순종을 시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현실의 저항에 대응하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조상들의 체험은 후손에게 자동으로 이전되지 않는다. 새 세대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언약을 다시 선택해야 한다. 경험하지 않은 신앙은 실제 압력 속에서 선택되고 훈련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시험하신다는 표현은 하나님이 정보를 얻지 못해 확인한다는 설명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충성이 역사 속 행동으로 공개되도록 하신다는 서술이다.
은혜로 얻은 땅에서도 다음 세대의 순종은 필요하다. 이전 세대의 믿음은 현재 세대의 책임을 대신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압도적으로 보여 주신다면 선택의 여지는 줄어든다. 어느 정도의 감춤과 저항이 남아 있을 때, 사람은 실제로 무엇을 믿고 따르는지 행동으로 드러낸다.
모든 장애물이 즉시 사라진다면 충성과 책임은 충분히 검증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결정을 대신하지 않으시는 자리에서 인간은 자신의 욕망과 두려움 속에서도 무엇을 선택할지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모든 고통과 장애물을 하나님이 주신 시험이라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피해를 주는 상황에서는 멈추거나 벗어나야 한다.
반대로 정당한 책임과 성숙을 요구하는 어려움이라면 원칙을 지키며 통과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과 실제 결과를 함께 살피며 두 상황을 분별하는 일이다.
장애물이 없어져야만 바르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남아 있는 압력은 내가 실제로 어떤 원칙을 선택하는지 드러낸다.
다만 학대나 부당한 피해까지 참고 견뎌야 할 훈련으로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 피해야 할 위험과 책임 있게 통과해야 할 어려움을 구분해야 한다.
현재의 장애물을 두 종류로 나눈다. 즉시 중단하거나 피해야 할 피해와, 원칙을 지키며 능력을 길러 통과해야 할 책임을 구분한다.
물려받은 신앙은 저항이 남아 있는 현실에서 자기 선택과 훈련으로 바뀌어야 한다.
사사기 3장 3절
: 남겨진 민족들의 지리적 범위
3절에서 시험은 한 지점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경계에서 찾아왔다. 남겨진 세력은 남서쪽 블레셋 지역부터 북쪽 레바논 일대까지 넓게 퍼져 있었다.
이스라엘은 특정 전선에서만 시험받은 것이 아니라, 생활권 전체에서 다른 종교와 정치 질서를 마주했다.
하나님을 향한 충성은 안전한 종교 공간에서만 확인되지 않는다. 정치, 경제, 관계, 문화가 다른 질서와 접촉하는 모든 경계에서 드러난다.
여기서 문제는 특정 사람이나 민족 자체가 아니라, 진실을 가리고 욕망과 힘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방식에 있다.
따라서 블레셋이나 가나안 민족을 악한 존재의 상징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본문의 공간적 경계는 오늘 우리의 삶에서 무엇이 들어오고 영향을 미치는지 살피게 한다.
정보, 관계, 돈, 권력, 두려움이 어떤 경로를 통해 우리의 판단과 선택에 영향을 주는지 분별해야 한다.
가장 큰 잘못은 특정 집단을 악 그 자체로 규정하고 그들의 인간성을 지우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타인을 악의 대상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다.
내 욕망과 두려움이 어떻게 진실과 책임을 가리고 있는지 살피는 일이다.
위험은 특정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보다, 내가 아무 기준 없이 그 사람의 가치와 행동 방식을 받아들이는 데서 커진다.
내 삶으로 들어오는 정보, 관계, 돈, 인정의 통로를 살펴보고, 어떤 영향은 받아들이고 어떤 영향은 거절할지 기준을 세워야 한다.
현재 내 판단에 영향을 주는 다섯 영역을 적는다. 사람, 미디어, 직장 문화, 돈의 압력, 인정 욕구를 살핀 뒤, 각각에 적용할 경계를 한 문장으로 정한다.
순종은 삶의 모든 경계에서 들어오는 영향을 분별하는 능력으로 나타난다.
사사기 3장 4절
: 시험의 본질인 명령에 대한 순종
4절은 1~2절의 목적을 해석한다. 전쟁을 배우는 궁극적인 이유는 강한 민족이 되는 데 있지 않고, 모세를 통해 주신 명령에 순종하는지 드러내는 데 있다.
시험의 기준은 능력의 크기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말씀에 대한 순종이다.
신앙의 실패는 하나님의 뜻을 전혀 몰라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알고 있는 명령보다 당장의 안전, 관계, 이익을 우선할 때 무너진다.
말씀은 단순히 아는 데서 끝나지 않고, 삶의 선택과 행동으로 나타날 때 그 뜻이 현실에 드러난다. 말씀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으면 지식과 삶이 분리된다.
영적인 감동을 많이 느껴도 시간의 사용, 말하는 방식, 돈을 쓰는 기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그대로라면 말씀은 아직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필요한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기준 하나를 오늘 실제로 실행하는 것이다. 순종은 모든 것을 완전히 이해한 뒤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분명히 알고 있는 책임을 하나씩 실천할 때 말씀에 대한 이해와 믿음도 더욱 깊어진다.
옳은 기준을 알고 있어도 행동이 달라지지 않으면, 그 지식은 실제 삶을 지배하지 못한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더 연구하는 데 머물지 말고, 이미 알고 있는 원칙 하나를 시간표와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사사기 3장 1절부터 11절을 묵상하며, 알고 있으면서도 반복해서 실천하지 못한 원칙 하나를 정한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무엇을 할지 구체적인 행동으로 적어 실제로 실행한다.
시험은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가 아니라, 알고 있는 말씀을 실제로 따르는지를 드러낸다.
사사기 3장 5~6절
: 함께 거주함에서 혼인과 우상숭배로 이어진 과정
5절에서 이스라엘은 주변 민족을 관리하는 위치에서 그들의 질서 안에 머무는 위치로 내려갔다.
사사기 1장에서는 가나안 사람들이 이스라엘 가운데 거주했다고 반복되었다. 이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민족들 “가운데” 거주한다고 서술한다.
공간의 표현이 뒤집히면서 주도권의 변화가 드러난다. 이스라엘이 주변 환경을 변화시키기보다, 주변의 생활 질서가 이스라엘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다른 문화와 함께 사는 일 자체가 죄는 아니다. 본문이 경고하는 것은 관계를 맺으면서도 자신의 언약적 정체성과 예배의 중심을 지키지 못한 상태이다.
음식, 돈, 관계처럼 일상의 많은 것은 그 자체보다 어떻게 사용하고 어떤 목적을 따르느냐가 중요하다.
이스라엘이 여러 민족 가운데 살아야 했다는 사실은 끊임없는 분별을 요구한다. 세상과 완전히 단절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살피고, 받아들일 것과 거절할 것을 구분해야 한다.
문제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까지 모두 옳다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바뀌는 데 있다.
관계를 무조건 끊기보다, 그 관계가 내 말과 선택과 하나님을 향한 태도를 어느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지 먼저 살펴야 한다.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무엇을 받아들이고 거절할지 기준이 없으면, 주변의 방식이 자연스럽게 내 기준이 된다.
사사기 3장 1절부터 11절을 묵상하며, 관계는 유지하되 거짓말과 부당한 이익, 책임을 피하는 행동까지 따라가지 않도록 분명한 경계를 세운다.
내가 오래 머무는 환경 세 곳을 적는다. 그곳에서 반복적으로 받아들이는 말, 행동, 성공 기준 가운데 하나님의 뜻과 충돌하는 것을 찾아 경계를 정한다.
사람은 자신이 오래 머무는 환경을 변화시키지 못하면, 그 환경의 질서에 의해 형성된다.
6절에서 이스라엘은 가나안 사람들과 혼인 관계를 맺었고, 마침내 그들의 신들을 섬겼다. 본문은 친밀한 관계가 가치와 예배를 전달하는 통로가 되었음을 보여 준다.
경계 없는 관계 결합은 생활의 연합을 넘어 예배의 중심까지 이동시켰다.
사랑과 포용은 모든 가치의 결합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면서도, 하나님을 대신하는 요구에는 참여하지 않는 경계가 필요하다.
본문을 현대의 인종 간, 민족 간 결혼을 반대하는 근거로 사용할 수 없다. 경고의 중심은 혈통이 아니라 언약적 충성과 예배의 방향이다.
가까운 관계에서는 사랑과 애정만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두려워하는 것, 원하는 것, 무엇을 성공이라고 생각하는지도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문제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의 생각과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는 데 있다. 경계가 사라지면 관계는 서로를 살리기보다, 한쪽의 욕망과 기준이 다른 사람의 선택까지 지배하게 만들 수 있다.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상대를 억지로 바꾸거나 통제하지 않으면서도 분명한 선을 세워야 한다. 사랑하더라도 거짓말, 잘못된 숭배, 부당한 이익에는 함께하지 않아야 한다.
가까운 관계는 감정뿐 아니라 가치와 습관을 전달한다. 상대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반복해서 내 결정에도 들어온다.
사랑을 유지하더라도, 거짓말을 대신해 주거나 부당한 일을 함께하는 데까지 나아가서는 안 된다.
가까운 관계에서 내가 원하지 않으면서도 반복해서 동조하는 행동을 하나 찾는다. 상대를 비난하지 말고, 앞으로 참여하지 않을 행동과 그 이유를 분명하게 말한다.
친밀함에 경계가 없으면 상대의 가치가 내 예배와 선택의 중심까지 바꿀 수 있다.
사사기 3장 7절
: 여호와를 잊고 다른 신을 섬김
7절에서 첫 번째 사사 순환이 시작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삶을 결정하는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잊은 빈자리는 중립으로 남지 않았다. 바알들과 아세라들이 그들의 욕망, 안전, 생산, 미래를 맡기는 새로운 중심이 되었다.
하나님을 잊는다는 것은 정보가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실제 결정에서 제외되는 상태이다.
우상은 반드시 신상의 형태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님보다 더 궁극적인 안전, 성공, 사랑, 통제력을 약속하며 실제 선택을 지배하는 것이 우상의 기능을 수행한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말씀을 많이 알고 기억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지식이 실제 선택과 행동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시간의 사용, 돈의 사용, 인간관계의 선택과 분리되면 삶을 이끌지 못한다. 그 빈자리는 자신의 욕망과 이익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방식이 차지하게 된다.
문제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시간이 부족한 데만 있지 않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 결정은 욕망과 편의에 따라 내리는 데 있다.
이를 바로잡으려면 중요한 선택을 할 때 무엇이 하나님의 뜻과 책임에 맞는지 다시 기준으로 세워야 한다.
잊음은 하나님에 관한 내용을 모르는 상태가 아니다. 알고 있는 원칙이 일정, 지출, 인간관계, 업무 판단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생각으로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시간과 돈을 바치는 대상을 비교해야 한다.
지난 일주일의 시간, 지출, 검색 기록, 걱정의 내용을 살핀다. 내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대상과 실제로 가장 많이 섬긴 대상이 일치하는지 기록한다.
하나님을 잊으면 삶은 비어 있지 않고, 다른 욕망과 두려움이 주인의 자리를 차지한다.
사사기 3장 8절
: 선택한 섬김이 정치적 종살이로 돌아옴
이스라엘은 7절에서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겼고, 8절에서는 구산 리사다임을 섬기게 된다. 종교적 복종이 정치적 종속으로 전환된다.
스스로 선택한 우상에 대한 섬김은 결국 다른 권력에 대한 종살이로 돌아왔다.
하나님의 심판은 때때로 사람이 선택한 주인이 실제로 어떤 지배를 가져오는지 드러내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자유를 약속했던 우상이 더 무거운 복종을 요구한다.
사람이 어떤 대상에 계속 관심과 시간을 쏟고, 두려워하며 따르기 시작하면 그 대상은 점점 삶을 지배하게 된다.
처음에는 내가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같은 선택이 반복되면 습관과 의존이 생기고, 나중에는 다른 선택을 하기 어려워진다. 내가 계속 힘을 실어 준 대상이 오히려 나를 움직이는 힘이 되는 것이다.
이 문제에서 벗어나려면 단순히 억압이 사라지기만 바라서는 안 된다. 그 지배를 계속 강하게 만들어 온 자신의 반복적인 행동부터 멈춰야 한다.
반복해서 시간과 돈과 복종을 바친 대상은 점차 내 선택을 지배한다. 처음에는 내가 이용한다고 생각하지만, 나중에는 그것이 없으면 불안해서 멈추지 못하게 된다.
사사기 3장 1절부터 11절을 묵상하며, 잘못된 지배에서 벗어나려면 고통스러운 결과만 없애려 하지 말고, 그 지배를 키워 온 반복적인 행동부터 끊어야 한다.
현재 나를 지배하는 습관 하나를 선택한다. 그 습관을 강하게 만드는 시간, 장소, 감정, 사람, 결제 방식 가운데 하나를 오늘 차단한다.
내가 반복해서 섬긴 대상은 결국 나에게 더 큰 복종을 요구한다.
사사기 3장 9~10절
: 부르짖음, 옷니엘, 여호와의 영, 승리
9절에서 이스라엘은 압제를 견디지 못하고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본문은 그들이 충분히 회개했다고 자세히 설명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한 구원자를 세우신다.
구원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강해지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사람을 선택하고 세우시는 데서 출발한다.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은 구원의 전환점이지만, 구원의 근거는 하나님의 자비와 주권이다.
하나님은 완전히 정리된 사람만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고통 속 부르짖음에도 응답하시지만, 그 응답은 단순한 상황 완화가 아니라 잘못된 지배에서 백성을 건져 내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사람이 먼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은 중요한 출발점이다. 부르짖음은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행동이다.
그러나 사람이 부르짖었다고 해서 하나님의 구원이 자동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구원은 인간의 요청보다 더 큰 하나님의 자비에서 시작되며, 하나님께서 구원자를 세우심으로 현실에 나타난다.
문제는 고통이 사라질 때까지만 하나님을 찾고,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이전의 욕망과 생활 방식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
진정한 돌이킴은 도움을 구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앞으로 무엇을 따르고 섬길 것인지 삶의 기준을 다시 정해야 한다.
도움을 구하는 첫 행동은 괜찮은 척하지 않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기만 지나가기를 구해서는 반복을 막기 어렵다. 나를 그 상황으로 이끈 선택과 습관까지 바꾸어야 한다.
현재의 어려움을 막연히 괴롭다고만 말하지 않는다.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사실, 잘못 선택한 부분, 지금 도움을 요청할 사람, 중단해야 할 행동을 각각 기록한다.
부르짖음은 자기 통제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향해 방향을 돌리는 첫 행동이다.
10절에서 하나님은 옷니엘에게 영을 주시고, 그를 사사로 세우며, 적을 그의 손에 넘기신다. 옷니엘은 실제로 판단하고 전쟁에 나가지만, 승리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다.
옷니엘의 힘은 개인적 영웅성에서 나오지 않고, 여호와의 영과 하나님의 넘겨주심에서 나왔다.
성령의 능력은 개인을 위대하게 보이게 하는 장식이 아니다. 공동체를 억압에서 건지고, 무너진 정의와 질서를 다시 세우도록 맡겨진 힘이다.
하나님이 주신 능력과 인간의 용기는 경쟁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주도하시기 때문에 옷니엘은 책임 있게 행동할 수 있다.
사람의 생명과 능력은 모두 자기 안에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것이다. 옷니엘도 하나님께 힘을 받아 사용했지만, 그 힘의 주인이 된 것은 아니다.
힘은 올바르게 사용될 때 악을 막고 억압을 끊는 능력이 된다. 그러나 받은 권한을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내거나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데 사용하면 본래 목적에서 벗어난다.
따라서 능력과 권한이 커질수록 더 신중해야 한다. 무엇을 위해 사용하는지, 과정은 올바른지, 맡은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지 더 엄격하게 살펴야 한다.
힘은 다른 사람을 누르는 능력이 아니라, 무너진 질서를 바로 세우도록 맡겨진 책임이다.
능력과 권한이 커질수록 내 공로를 강조하기보다, 누구를 보호해야 하며 어떤 절차를 지켜야 하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내가 가진 권한이나 능력 하나를 선택한다. 그 힘으로 얻을 성과보다, 보호해야 할 사람, 지켜야 할 절차, 남겨야 할 기록을 먼저 정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은 개인을 높이기보다 공동체의 억압을 끊고 질서를 세우게 한다.
사사기 3장 11절
: 땅의 평온과 지도자의 죽음
11절에서 전쟁의 승리는 개인의 명예로 끝나지 않고 땅의 평온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절의 마지막은 옷니엘의 죽음을 기록하며, 한 지도자에게 의존한 평화의 한계를 드러낸다.
옷니엘의 승리는 땅에 긴 평온을 주었지만, 지도자의 죽음은 그 평온이 자동으로 지속되지 않음을 보여 준다.
구원의 목표는 적을 무너뜨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땅과 공동체가 다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질서를 세우는 데 있다.
그러나 좋은 지도자의 존재만으로 다음 세대의 충성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기억, 교육, 제도, 공동 책임이 이어져야 한다.
땅은 사람들의 선택과 통치가 실제 생활의 모습으로 자리 잡는 공간이다. 옷니엘을 통해 세워진 올바른 질서가 땅의 평온으로 이어졌다는 점은, 한 사람의 올바른 선택이 공동체의 생활과 제도에도 영향을 주어야 함을 보여 준다.
그러나 옷니엘이 죽자 그를 중심으로 유지되던 질서도 흔들린다. 좋은 지도자가 있다고 해서 그가 세운 기준과 책임이 다음 세대에 저절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좋은 지도자가 계속 해결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며 공동체가 스스로 책임을 배우지 않는 데 있다.
올바른 질서가 오래 지속되려면 경험과 기준을 규칙과 교육으로 남기고, 사람을 훈련하며, 권한과 책임을 나누고, 다음 사람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좋은 리더 한 사람이 만든 안정은 그 사람이 사라지면 약해질 수 있다. 성과를 오래 이어가려면 판단 기준과 업무 절차를 기록하고, 다음 사람이 직접 수행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현재 내가 맡아 유지하고 있는 일 하나를 선택한다. 결과만 남기지 말고 원칙, 판단 기준, 반복 절차, 실패 사례를 기록하여 다른 사람이 이어갈 수 있게 한다.
참된 평온은 좋은 지도자의 능력이 공동체의 기억과 구조로 전환될 때 다음 세대까지 이어진다.
사사기 3장 1절부터 11절 묵상을 마무리하며…
남겨진 어려움은 내가 무엇을 믿는다고 말하는지가 아니라, 실제로 무엇을 섬기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이스라엘의 실패는 다른 민족이 곁에 있었다는 사실에서 자동으로 발생하지 않았다.
그들은 말씀보다 관계의 편안함과 현실적 이익을 우선했고, 함께 거주함을 경계 없는 결합으로 바꾸었다. 결국 그들이 선택한 섬김은 자신들을 지배하는 종살이로 돌아왔다.
사사기 3장 1~11절을 묵상하며, 현재 나를 지배하는 대상을 시간, 지출, 두려움, 관계의 네 영역에서 찾는다. 중단해야 할 반복 행동 하나, 배워야 할 능력 하나, 도움을 요청할 사람 한 명, 다른 사람이 이어 갈 수 있도록 기록할 원칙 하나를 오늘 실행한다.
[따름&드림]
오늘의 기도
하나님 오늘도 귀한 말씀을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세속적인 우상을 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상에 대해서 깨닫게 하소서.
반복되는 세속적인 습관을 일깨워 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게 하소서.
우리도 모르게 서서히 스며드는 우상적 습관을 경계하게 하시옵시고.
하나님의 뜻을 조금씩 실천하게 하소서.
현실적인 눈으로만 리더에 의존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 개개인이 스스로 하나님 말씀의 습관을 만들게 하소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할 수 있는 의지를 주소서.
오늘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묵상 성경 큐티 글쓰기는, 개인적으로 정리한 신앙적 성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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