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장 11절부터 21절 묵상, 승리보다 더 중요한

사사기 1장 11절부터 21절 묵상은 ‘승리보다 더 중요한 : 믿음에 필요한 자원, 전략, 지속성

대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매일 큐티 성경 묵상 글쓰기, 26/9/2, 892일차,

[살핌]

사사기 1장 11절부터 15절

: 드빌 정복과 생명을 지속시키는 샘물

사사기 1장 16절부터 21절

: 유다의 확장과 쫓아내지 못한 주민들

[새김]

승리보다 더 중요한
: 믿음에 필요한 자원, 전략, 지속성

사사기 1장 11절부터 21절 묵상의 배경


앞부분의 빠른 승리는 이 본문에서 정착의 문제와 현실적 한계를 만나기 시작한다.

1~10절에서 유다는 여호와의 지시에 따라 먼저 올라가고, 시므온과 연합하여 베섹, 예루살렘, 헤브론을 공격한다. 11절은 헤브론에서 드빌로 이동하며 그 흐름을 이어 간다.

이후 27~36절은 여러 지파가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한 사실을 반복하고, 2장 1~5절은 이를 언약 불순종으로 평가한다.

개역개정의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승리”라는 소제목은 편집자가 붙인 제목이다. 실제 본문은 승리뿐 아니라 제한, 미완성, 타협을 함께 기록한다.

사사기 1장 11절
: 헤브론의 승리에 머물지 않고 드빌로 나아가다


11절에서 “거기서 나아가서”는 헤브론의 승리가 종착점이 아니었음을 보여 준다. 유다는 이미 얻은 성과를 기념하는 데 머물지 않고, 아직 남은 드빌로 이동한다.

하나님의 약속은 막연한 가능성이 아니라, 구체적인 장소와 다음 행동을 요구한다. 과거의 순종은 오늘의 남은 책임을 대신하지 못한다.

기럇 세벨(키르얏 세페르)는 “기록, 문서, 책의 성읍”으로 번역할 수 있다. 기록된 지식이 실제 삶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것을 알고 있어도 닫힌 성읍처럼 현실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상태로 남을 수 있다.

지식이 삶에서 힘을 가지려면 이미 이룬 것에 머물지 않고, 다음에 해결해야 할 문제를 향해 움직여야 한다.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를 쌓는 일이 아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구체적인 선택과 행동으로 옮기는 데서 시작된다.


알고 있는 사실이 많아도 행동하지 않으면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전에 잘한 일로 자신을 설명하지 말고, 지금 남아 있는 다음 과제를 정해야 한다.

최근의 성과 뒤에 가려진 다음 책임을 한 가지 적는다. 그 책임을 추상적으로 두지 말고, 오늘 시작할 첫 행동까지 정한다.

믿음은 이전 승리를 지키는 데서 멈추지 않고 다음 성읍으로 이동한다. 이전 승리는 다음 책임을 면제하지 않는다.

사사기 1장 12~13절
: 갈렙의 제안에 옷니엘이 행동으로 응답하다


12~13절에서 갈렙은 공개적인 도전을 제시하고, 옷니엘은 실제 점령으로 응답한다. 이 사건은 옷니엘이 사사기 3장에서 첫 번째 사사로 등장하기 전에 그의 용기와 실행력을 미리 보여 준다.

단호한 결단이 관계와 미래를 세우는 방향으로 연결될 때 온전해진다.

하나님은 앞으로 공동체를 구할 사람을 평상시의 책임 수행 속에서 준비하신다. 큰 직위가 사람을 지도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어려운 과제를 완수하는 태도가 그 사람의 방향을 드러낸다.


정복에 필요한 단호한 결단이 자기 과시와 지배만을 향하면 파괴로 끝난다. 그러나 그 힘이 가족과 공동체,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과 연결되면 새로운 삶의 질서를 세우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옷니엘의 행동은 자신의 힘을 자랑하는 선언이 아니다. 맡겨진 책임을 실제 행동으로 감당한 사건이다.

힘은 자기에게서 나온 절대적인 소유가 아니라, 주어진 목적을 현실에서 이루기 위해 맡겨진 것이다.


능력을 증명하려면 자신을 크게 말할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이 피하는 어려운 과제를 맡아 끝내고, 그 결과가 공동체의 미래에 도움이 되게 해야 한다.

사사기 1장 11절부터 21절을 묵상하며, 직책이나 좋은 평가를 얻기 전에 누구도 대신 해결해 줄 수 없는 책임 하나를 맡아 끝까지 감당해야 한다.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에서 생기는 책임과 다른 사람에게 미칠 영향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옷니엘은 자신이 지도자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어려운 일을 실제로 완수함으로 자신의 책임감과 능력을 보여 주었다.

지도자의 가능성은 말보다 위험을 감수하고 책임을 끝까지 감당하는 행동에서 드러난다.

사사기 1장 14~15절
: 악사가 메마른 땅을 살릴 샘물을 요청하다


14절에서 악사는 앞 절에서 혼인의 대상으로 제시되었지만, 이 절부터 말하고 판단하는 주체로 전환된다. 그는 결혼과 토지 이전이 실제 생활 조건과 맞는지를 검토한다.

악사는 필요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 넌지시 맡긴 뒤 침묵한 것이 아니라, 직접 행동하여 대화를 열었다. 동작은 막연한 기대를 구체적인 필요의 자리로 가져오는 전환으로 읽을 수 있다.

믿음은 주어진 것을 무조건 감사하다고 말하며 결핍을 숨기는 태도가 아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삶을 책임 있게 운영하려면 필요한 조건을 정확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위에서 약속된 가능성은 아래의 필요가 목소리를 낼 때 현실과 연결된다.

받는 자가 자신의 상태를 숨기면 공급의 통로가 열리지 않는다. 악사의 내려옴은 자신을 낮추어 구체적인 현실을 인정하고, 관계 안에서 필요한 응답을 요청하는 행동이다.

도움을 기대하면서 상대가 알아서 눈치채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현재 조건, 부족한 자원, 필요한 지원을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


가족이나 조직에서 말하지 않은 채 상대가 알아주기를 기대하는 필요를 하나 찾는다. 요구가 아니라 사실, 이유, 필요한 자원의 순서로 차분하게 전달한다.

악사는 필요를 숨기지 않고 대화를 열어 자신의 삶에 필요한 조건을 확보한다.

악사는 주어진 조건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삶에 필요한 것을 말로 드러낸다.


15절에서 악사는 땅을 거절하지 않는다. 그는 남방의 건조한 토지가 실제 기업이 되려면 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판단하고, 샘물의 권리를 추가로 요청한다.

악사는 추상적인 축복이 아니라 땅을 살릴 실제 물을 요구했다. 갈렙도 형식적 소유만 넘기지 않는다. 윗샘과 아랫샘을 함께 주어, 딸의 기업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한다.

윗샘과 아랫샘의 배열은 위로부터 오는 공급과 아래에서 그것을 받는 현실의 결합을 생각하게 한다.

하나님의 복은 명목상의 지위나 소유에 머물지 않는다. 맡겨진 책임을 실제로 감당할 수 있는 조건과 수단도 함께 필요하다.


좋은 지도자는 사람에게 임무만 주지 않는다. 그 임무를 수행할 권한, 정보, 시간, 자원도 함께 제공한다.

악사가 받은 땅은 가능성을 가진 자리이지만, 물이 없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뜻과 가능성이 있어도 그것이 실제 삶에 필요한 자원과 연결되지 않으면 현실의 결과로 이어지기 어렵다.

필요한 것이 부족한 이유는 자원이 없어서만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 필요한 곳에 전달할 구조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큰 방향과 구체적인 필요를 함께 살피는 것이다. 높은 목표만 있으면 이상은 분명해도 실행이 메마를 수 있다.

반대로 당장의 문제만 해결하면 눈앞의 필요에는 대응하지만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방향을 잃을 수 있다. 뜻과 현실, 목표와 실행이 서로 연결될 때 받은 가능성이 실제 열매로 이어진다.

좋은 목표를 세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시간과 예산, 인력, 반복해서 실행할 절차까지 마련되어야 실제 결과로 이어진다. 반대로 눈앞의 일만 처리하다 보면, 왜 그 일을 하는지 방향을 잃기 쉽다.

사사기 1장 11절부터 21절을 묵상하며, 큰 방향을 분명히 세우는 동시에 그것을 매일 실행할 수 있는 자원과 방법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


현재 맡은 역할마다 필요한 권한, 정보, 시간, 예산, 협력자를 점검한다. 부족한 부분을 정신력으로 버티지 말고, 책임자에게 근거와 함께 요청한다.

참된 복은 땅만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땅에서 생명이 지속될 물길까지 여는 것이다.

땅을 받는 것보다 그 땅을 살릴 물길을 확보하는 일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사사기 1장 16절
: 겐 사람들이 유다와 동행하여 남방에 정착하다


16절에서 겐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 속하지 않지만, 유다와 함께 이동하여 남방에 정착한다. 본문은 정복 이야기 중간에 이들의 평화로운 합류와 거주를 삽입한다.

거룩함은 중심지에만 머물지 않고, 낯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경계 지역에도 자리 잡는다.

언약 공동체는 자기 집단의 순수성을 과시하는 폐쇄 체계가 아니다. 하나님과 그 백성의 길에 동참하는 사람에게 실제 거주와 책임의 자리를 제공한다.

동시에 겐 사람들의 이름이 보존된다는 점은, 합류가 정체성의 강제적 삭제를 요구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임재는 추상적 중심에만 머물지 않고 실제 사람들이 함께 먹고 거주하는 관계 속에 나타난다.

왜곡된 공동체는 외부인을 이용하거나,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그의 고유성을 지운다. 바른 질서는 서로 다른 배경을 인정하면서도 공동 책임, 보호, 배움의 관계를 세운다.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 이름만 구성원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역할, 정보, 의사결정 참여, 도움을 요청할 사람까지 구체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새로운 구성원이 들어왔을 때 환영 인사로 끝내지 않는다. 그 사람이 소속감을 가질 수 있도록 실제 역할, 관계망, 정보 접근 경로를 마련한다.

겐 사람들의 정착은 공동체가 동행하는 사람에게 실제 삶의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함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공동체는 혈통만이 아니라 동행, 신뢰, 거주를 통해서도 형성된다.

사사기 1장 17~18절
: 유다와 시므온이 남방과 해안 지역으로 확장하다


17절에서 유다는 시므온과 맺은 약속을 실제로 지킨다. 자신의 기업을 정복할 때 도움만 받은 뒤 관계를 끝낸 것이 아니라, 시므온이 자기 지역을 정복할 때에도 함께한다.

그러나 모든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서로 맡은 책임과 약속은 끝까지 지키되, 사람과 공동체를 해치는 관계나 잘못된 결탁은 단호하게 끊어야 한다.

본문은 가나안의 죄악과 이스라엘에게 맡겨진 심판 수행이라는 고대 언약 전쟁의 틀 안에서 사건을 설명한다.

그러나 이 명령은 특정 본문, 시대, 땅에 속한 것으로, 오늘날 다른 민족이나 종교 집단을 제거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없애야 할 대상은 사람 자체가 아니라, 거짓과 착취, 중독처럼 사람과 공동체를 계속 해치는 행동과 관계의 구조이다.

사람을 적으로 규정해 공격하기보다, 거짓 보고와 폭력적인 말, 부당한 거래, 반복되는 중독이 계속될 수 있는 조건을 끊어야 한다.

단호함이 분노에 끌려가면 사람을 파괴하는 힘이 된다. 그러나 진실과 책임 아래 사용되면 반복되는 잘못을 멈추고 더 큰 피해를 막는 경계가 된다.

따라서 현재 피해를 반복해서 만드는 행동 하나를 분명히 정하고,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그 행동이 계속될 수 있는 길을 차단해야 한다.

사사기 1장 11절부터 21절 묵상에서 산등성이의 유다 전사들이 골짜기 아래 철 병거와 성읍을 바라보는 모습


기록과 규칙을 세우고, 책임을 맡을 사람과 점검할 시점도 분명히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호르마의 이야기를 오늘날 사람을 제거하거나 폭력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유다가 시므온과의 약속을 지킨 것처럼 책임 있는 관계는 지켜야 하지만, 사람과 공동체를 해치는 행동과의 결탁은 단호하게 끊어야 한다.

고대 전쟁의 진멸 이야기는 당시의 문맥과 오늘의 적용을 분명하게 구분해서 읽어야 한다.


18절에서 유다의 세력이 남방에서 해안 지역까지 확대된다. 그러나 바로 다음 절에서 평지 주민을 쫓아내지 못했다고 기록되므로, 이 승리는 안정된 지배보다 일시적 점령이나 부분적 장악으로 읽는 편이 자연스럽다.

본문은 유다의 승리 범위를 크게 들려주지만, 다음 절에서 그 범위가 유지되지 못했음을 보여 준다. 상징적으로 공급이 넓은 경계까지 확장되어도, 그것을 유지할 구조가 없으면 다시 흩어진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한 번의 성공이 지속적인 순종을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획득과 정착, 시작과 유지, 승리와 통치는 서로 다른 책임이다.


힘이 확장될 때 그것을 받아 유지할 구조가 함께 필요하다. 힘이 넓게 퍼지기만 하고 그것을 담을 질서가 없으면, 성과는 오래 유지되지 못한다.

외적인 성장은 눈에 잘 띄지만, 그보다 먼저 내부의 준비가 필요하다.

관계와 규칙, 교육, 자원 배분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채 규모만 커지면, 넓어진 영역이 오히려 더 큰 갈등과 균열을 만들 수 있다.


새 사업, 조직, 관계를 빠르게 넓히기 전에 유지할 사람과 절차가 있는지 확인한다. 시작한 숫자보다 실제로 남아 작동하는 결과를 기준으로 평가한다.

최근 성과를 평가할 때 시작 여부만 기록하지 않는다. 유지율, 실제 사용, 후속 관리, 발생한 비용과 피해까지 함께 점검한다.

점령한 성읍도 유지할 질서가 없으면 다시 다른 세력의 손으로 돌아간다. 점령에 성공했다는 기록과 그 지역을 지속적으로 통치했다는 사실은 같지 않다.

사사기 1장 19~20절
: 철 병거 앞에서 멈춘 유다와 끝까지 완수한 갈렙이 대조되다


19절에서 하나님의 동행은 현실적 장애를 무시하게 하지 않고, 그 장애를 넘어설 전략과 책임을 요구한다.

이 절은 본문의 결정적 전환점이다. “여호와께서 함께 계셨다”는 신학적 선언과 “쫓아내지 못하였다”는 군사적 한계가 한 문장 안에 놓인다.

본문은 철 병거라는 실제 이유를 밝힌다. 동시에 사사기 1~2장의 넓은 흐름은 이러한 미완성이 결국 순종의 실패와 연결된다고 평가한다.


이 구절은 하나님이 철 병거보다 약했다는 말이 아니다. 히브리어 문장의 행동 주체는 유다의 군대이며, 실패도 유다의 경험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임재는 인간의 준비, 전략, 훈련, 연합을 대신하지 않는다. 유다는 산지에서 경험한 방식을 평지에서도 그대로 사용했거나, 새로운 위협에 맞는 대응을 마련하지 못했을 수 있다.

다만 본문에 기록되지 않은 불신앙의 심리를 임의로 단정해서도 안 된다. 이 절은 실제 군사적 원인을 제시하고, 2장에 이르러 더 넓은 언약적 실패를 밝힌다.


높은 곳에서 받은 뜻이 현실에 적용될 때는 더 단단한 저항을 만날 수 있다. 뜻이 옳다고 해서 현실의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철 병거는 한 사람의 감정보다 훨씬 강하게 굳어진 제도, 기술, 자본, 습관과 같은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이런 문제는 좋은 의도만으로 바꾸기 어렵다. 뜻을 실제 결과로 이어 가려면 필요한 기술을 갖추고, 사람들과 협력하며, 절차를 세우고, 꾸준히 훈련해야 한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로 사용하면 맡겨진 일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

반대로 현실의 장애물을 지나치게 크게 보면 처음 받은 사명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 믿음은 준비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도 필요한 준비를 하며 맡은 일을 계속 감당하게 하는 힘이다.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의지가 약하다고만 자책하지 않는다. 상대의 기술, 자원, 구조, 지형을 분석하고 자신의 방법을 바꿔야 한다.


또한 현실적 한계를 설명하는 일이 포기의 핑계가 되어서도 안 된다. 필요한 능력을 배우고, 협력자를 모으고, 단계적으로 다시 접근해야 한다.

사사기 1장 11절부터 21절을 묵상하며, 내가 ‘철 병거처럼 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장애 하나를 정한다.

막연히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지 말고, 실제 한계가 무엇인지 살펴본다. 부족한 능력과 필요한 자원, 도움을 요청할 사람, 먼저 시도해 볼 작은 방법을 나누어 기록한다.

하나님의 동행은 장애를 부정하지 않고, 장애에 맞는 책임 있는 전략을 세우게 한다.


20절에서 갈렙의 완수는 공동체 전체가 미완성에 머문 상황에서도 끝까지 순종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19절에서 유다가 철 병거 앞에 멈춘 뒤, 20절은 갈렙이 아낙 자손을 쫓아낸 사실을 다시 제시한다. 강한 상대 자체가 순종을 불가능하게 만든 것은 아니라는 대조가 생긴다.

유다가 이루지 못한 행동을 갈렙은 약속에 따라 실제로 완수했다. 과거의 약속, 현재의 행동, 미래의 기업이 한 방향으로 정렬되는 장면이다.


갈렙은 모세 시대의 약속을 여호수아 사후까지 붙든다. 약속의 성취가 늦어졌다고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의 순종은 공동체의 실패를 정죄하기 위한 자랑이 아니라, 다른 선택이 실제로 가능했음을 보여 주는 증거다.

갈렙이 약속받은 땅을 차지하는 모습은 오래전에 받은 약속과 지금 해야 할 행동이 함께 이어질 때 그 약속이 현실이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문제는 약속을 마음의 위로로만 간직하거나, 자신의 행동과 성과를 자기 능력만으로 이룬 것으로 여기는 데 있다.

갈렙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기억하면서도 자신이 해야 할 몫까지 하나님께 대신해 달라고 하지 않는다.


약속을 믿는 믿음과 책임 있는 행동이 함께할 때 받은 뜻이 실제 삶에 자리 잡는다.


오래전에 하기로 한 일을 새로운 계획으로 덮지 않는다. 당시의 약속이 아직 유효하다면, 현재 조건에 맞게 다시 정리하여 끝낸다.

오래 미뤄 둔 약속이나 책임 중 아직 유효한 것을 하나 선택한다. 완료 조건과 기한을 다시 정하고, 새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마무리한다.

갈렙은 오래된 약속을 기억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끝까지 현실로 완성한다.

사사기 1장 21절
: 예루살렘 중심부에 미완성의 공존이 고착되다


21절에서 중심부에 남겨 둔 미완성은 시간이 지나면 예외가 아니라 일상의 질서가 된다.

예루살렘은 이미 8절에서 유다가 공격하여 불태운 성읍이다. 그러나 유다는 그곳에 안정적으로 정착하지 못했고, 베냐민도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한다.

일시적인 승리 뒤에 지속적인 통치가 세워지지 않자, 여부스 족속과의 공존이 “오늘까지” 이어지는 상태가 된다.


제거하지 못한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생활 질서로 굳어졌다. 이것은 공동체의 중심이 하나의 뜻으로 통합되지 못한 상태를 생각할 수 있다.

처음에는 불가피한 한계처럼 보였던 상태가 시간이 지나면 정상적인 공존으로 굳어진다. 미완성 자체보다 더 위험한 것은, 미완성을 더 이상 책임으로 인식하지 않는 태도다.

예루살렘은 훗날 하나님 백성의 통합 중심이 될 도시다. 사사기 첫 장은 바로 그 중심부터 분열과 미완성을 품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공동체의 중심이 하나로 정리되지 않으면 서로 다른 의지와 가치가 같은 자리에서 계속 충돌한다.

처음에는 서로 적당히 공존할 수 있는 것처럼 보여도, 진실과 거짓, 책임과 회피를 동시에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사람을 억압하거나 폭력적으로 밀어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실제 선택과 결정을 무엇이 지배하고 있는지 분명히 밝히고, 그 기준에 따라 관계와 질서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중요한 문제를 계속 미루면 그것이 내 생활방식이 된다. 돈, 관계, 건강, 신앙의 중심에서 오래 방치한 기준을 찾아 결정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오랫동안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인 생활 구조를 하나 점검한다. 사람을 공격하지 말고, 문제를 반복시키는 규칙, 보상, 경계, 의사결정 절차를 바꾼다.

중심에서 방치한 미완성은 시간이 지나면 다음 세대가 살아야 할 현실이 된다.

사사기 1장 11절부터 21절 묵상을 마무리하며…


하나님이 주신 가능성은 옷니엘의 행동, 악사의 요청, 갈렙의 공급을 통과해 실제 삶의 터전이 된다.

약속만 붙들거나 행동만 강조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책임을 맡을 사람, 필요한 자원, 지속 가능한 질서가 함께 세워져야 한다.

사사기 1장 11절부터 21절을 묵상하는 우리는, 맡은 일에 필요한 물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현실의 철 병거를 구조적으로 분석하며, 중심에 오래 방치한 미완성을 다시 다루어야 한다.

성과를 기록할 때 결과만 적지 않고, 도움을 준 사람, 필요한 자원, 남은 피해, 다음 책임까지 함께 정리한다.

[따름&드림]

오늘의 기도


하나님 오늘도 귀한 말씀을 전해주심에 감사합니다.

우리가 현실의 한계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놓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필요한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하나님 말씀을 실현하기 위해, 마주하는 현실의 어려움에 극복할 수 있는 의지를 주시옵소서.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고, 완성을 위해 노력하는 우리가 되게 하시옵소서.

이기적인 마음으로 하나님께 의지만 하기보다, 현실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우리가 되게 하시옵소서.

현실을 지혜롭게 극복해 나가는 우리가 되게 하시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묵상 성경 큐티 글쓰기는, 개인적으로 정리한 신앙적 성찰입니다.